같은 목적지, 다른 자세

한 칸 생각

by 한칸생각


경주로 향하던 길이었다.


가족여행이라는 말만으로도 마음이 한 박자 느긋해진 아침.


나는 운전에 집중하느라 창밖 풍경을 볼 여유가 없었다.
길은 내 몫이었고, 풍경은 나중으로 미뤄 둔 약속 같았다.


차 안은 조용했지만 완전히 풀어진 침묵은 아니었다.


운전석 옆에는 운전자가 조는지 안 조는지 감시하는 아내가 앉아 있었다.


눈을 감은 듯하다가도
내 눈꺼풀이 조금이라도 무거워 보이면 곧바로 깨어 있는 눈빛으로 나를 훑는다.


자는 건지, 지키는 건지
그 경계가 아주 얇은 상태로.
그 자리는 늘 그렇듯
가장 예민하게 깨어 있는 자리였다.


뒤쪽에서는
작은딸이 세상 근심을 내려놓은 얼굴로 깊이 잠들어 있었고
그 옆에서 사위도 곤히 잠에 빠져 있었다.


장인이 운전하는 차 안에서 저렇게 깊이 잠든다는 건
불편함이 아니라 신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정말 많이 피곤했구나.
괜히 마음이 먼저 쓰였다.


사실 나는 이 장면을 직접 보지 못했다.
운전에 집중하고 있었으니까.


대신 나중에
큰딸이 찍어둔 사진으로 알게 되었다.


혼자만 또렷한 얼굴로 셀카를 찍고 있는 표정에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장난기가 묻어 있었다.


이 집에서는 늘 누군가 기록을 남긴다.


잠든 사람 둘,
길을 붙잡은 사람 하나,
조는지 안 조는지 지키는 사람 하나,
그리고 이 모든 순간을 몰래 남긴 사람 하나.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같은 여행을 건너고 있었다.


이 모습 또한
여행이 건네준 아주 좋은 장면이다.


사랑한다.
이 평범한 순간까지도 함께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