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테라스

한 칸 생각

by 한칸생각

몬테카를로 출장 중의 이야기다.


업무 미팅을 마치고 거래업체와 저녁 식사를 위해
지중해가 바로 내려다보이는 테라스 레스토랑에 앉았다.


바다는 말 그대로 엽서 속 풍경이었다.


우리는 지중해에서 막 잡은 생선으로 요리한다는 메뉴를 주문했다.


이곳 레스토랑은 신선함을 강조하기 위해
요리 전, 살아 있는 물고기를 직접 가져와 보여주는 이벤트가 있었다.


잠시 후 종업원이 물고기를 들고 내 앞으로 다가왔다.


은빛 비늘이 아직도 파닥거리던 그 순간,
하늘 위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기척이 느껴졌다.


갈매기였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니라,
“저건 우리 거야”라고 주장하는 눈빛의 갈매기들.


종업원이 물고기를 보여주는 찰나,
갈매기 한 마리가 순식간에 급강하했다.


다행히 종업원이 반사적으로 물고기를 가슴 쪽으로 감추며
공격은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목표를 놓친 갈매기는
분명히 약이 올랐다.


그리고 그 분노의 방향은
아주 정확하게… 나였다.


다음 순간,
나는 느꼈다.


지중해의 햇살도, 바람도 아닌
차갑고 불길한 기운을.


갈매기는
내 양복바지 위에
배설물로 완벽한 그림을 남기고
자신의 감정을 정리한 채 떠났다.


문제는
그 위치였다.


정말,
하필이면
그 위치였다.


순간 테이블 위의 대화는 멈췄고,
종업원은 상황을 파악하자 굳어버렸다.


내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빠르게 계산 중이었다.


‘이걸 내가 닦아야 하나?’
‘종업원에게 부탁해도 되나?’


여자 종업원은
도와줘야 한다는 직업의식과
어디까지가 업무 범위인지에 대한 고민 사이에서
미묘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결국 누구도 쉽게 손을 내밀지 못한 채
우리는
지중해보다 더 깊은 침묵 속에 앉아 있었다.


그 순간,
동행 중 한 사람이 이 모든 상황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건 기록해야 합니다.”


그날의 미팅 내용은
솔직히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확실한 건 하나다.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엉뚱한 타이밍에
웃음을 건네는지를
온몸으로 배웠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확신한다.


그날 갈매기는
물고기보다
나를 더 신선한 재료로 봤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