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기분의 소비

한 칸 생각

by 한칸생각

미얀마 양곤을 여행하던 날이었다.
불교 신앙의 중심지 쉐다곤 파고다를 찾았다.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거대한 탑은 햇빛을 받아 눈이 부실 만큼 아름다웠다.


관광객의 탄성과 순례자의 기도가 뒤섞인, 장엄하면서도 경건한 공간이었다.

그런데 그날 내 기억에 가장 오래 남은 장면은
사원의 크기도, 황금빛 장식도 아니었다.

작은 새 한 마리.

불교에서 방생은 생명을 풀어주는 선행으로 여겨진다.
많은 관광객이 체험처럼 방생을 한다고 했다.
우리도 그 흐름에 섞였다.

상인에게 작은 새를 사고
케이지 문을 열어 하늘로 날려 보내는 방식이었다.

케이지 안의 새들은 유난히 사납고 시끄러웠다.
좁은 공간에 갇혀 있으니 그러려니 했다.

막상 손을 넣는 순간
손가락에 통증이 번졌다.
새가 세게 물었다.

‘풀어 주려는 건데 왜 이렇게 사나울까.’
고맙다는 말은 바라지 않았지만
적어도 저항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 생각이 이미 오만이었다.
곧 이유를 알게 되었다.


풀려난 새들은 멀리 날아가지 못했다.
사원 근처 덫에 다시 걸렸고
다시 케이지 안으로 돌아왔다.

방생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었다.

그 작은 새는 이미 여러 번
같은 일을 반복했을지도 모른다.

풀려나는 환희와
곧이어 닥치는 포획.
희망과 절망을 번갈아 겪은 날개였다.

그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내 손이 얼마나 낯설고 위협적이었을지 이해가 되었다.

나는 자유를 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시스템의 일부였을 뿐이다.

황금빛 사원 아래에서
나는 인간의 이중성을 보았다.

생명을 살린다 말하면서
그 생명을 거래한다.
선행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소비를 만든다.

생명을 중히 여기는 곳에서
이런 일이 반복된다는 사실이 더 아이러니했다.

방생은 과연
생명을 살리는 일인가,
아니면 학대의 또 다른 방식인가.

황금사원은 눈부셨지만
케이지 안의 눈빛은 탁했다.

그날 이후 나는 묻게 되었다.
우리는 정말 선한 일을 하는가,
아니면 선한 기분을 소비하는가.

쉐다곤 파고다의 황금빛은
여전히 눈부시게 기억난다.

그러나 더 선명한 것은
내 손가락을 물던
작은 새의 두려운 눈빛이다.

그 눈빛은
내 안의 위선을
조용히 비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