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이 인문학이 될 때

한 칸 생각

by 한칸생각

이 계란은

서울대 대관령 목장에서

자연의 방식으로 기른 유정란이다.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귀하지만,

특별한 이유는

맛이나 신선도 때문만은 아니다.


한때

서울대 인문대학원 인문학 과정을

6개월 정도 다닌 적이 있다.


거창한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인문학적 소양을

조금 키워보고 싶다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그러다 수료를 위해

반드시 한 편의 글을 제출해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난감했다.

늘 스스로를

‘글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결국 마지못해,

숙제하듯 글을 썼다.


다만 최소한 부끄럽지는 않기 위해

생각과 느낌만큼은

솔직하게 담아보자고 마음먹었다.


며칠 뒤, 담당 조교로부터

뜻밖의 연락이 왔다.


수강생 가운데

교수 세 분의 엄정한 심사를 거쳐

내 글이 우수작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수료식 날,

직접 작품을 발표해 달라는 말과 함께.


더 놀라운 건

부상이었다.


“서울대에서 생산한 자연 유정란을

매주 한 번씩,

6개월간 집으로 배송해 드립니다.”라는

사회자의 멘트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솔직히

장난인 줄 알았다.


너무 엉뚱해서,

너무 생활적이어서,

그래서 더 인문학적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그 장난 같은 일이

현실이 되었다.


그날 이후로

일주일에 한 번씩

하얀 스티로폼 상자에 담긴 계란이

우리 집으로 도착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받은 상 가운데

가장 독특한 부상이었고,

가장 생활적인 선물이었다.


화려한 트로피도 아니고

벽에 걸어두는 상장도 아니었지만,

이 계란들은

내 일상 속으로 들어와

식탁 위에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그때 알게 되었다.

인문학은

꼭 책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말이 되고,

글이 되고,

때로는 이렇게

계란이 되어

사람의 삶 속으로

찾아오기도 한다는 걸.


그래서 나는

이 계란을 볼 때마다

웃음이 난다.


참 재밌고,

참 희한한 경험이었다고.


그리고 가끔은 생각한다.

내가 쓴 그 글도

이 계란 부상처럼

누군가의 기억 속에

조용히 남아

재밌고 따뜻한 이야기 하나쯤이

되어 주면 좋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