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칸 생각
우리는 오랫동안
교육을 ‘채우는 일’이라 배워 왔다.
모르는 것을 알려주고,
부족한 것을 보완하는 일.
아이가 문제를 틀리면 설명을 더 하고,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학원을 하나 더 보낸다.
무언가를 더 넣으면
언젠가는 나아질 것이라 믿는다.
그런데 어느 순간,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교육은
채우는 일이 아니라
꺼내는 일 아닐까.
아는 한 아이는 교실에서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조용하고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발표 시간에는 고개를 숙였고,
토론 시간에는 끝까지 손을 들지 않았다.
하지만 글쓰기 시간이 되면
그 아이의 공책은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문장은 섬세했고,
생각은 깊었고,
마음은 따뜻했다.
그 아이는
말로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글로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왜 더 적극적이지 않니?”라는 질문이 아니라,
“네 방식으로 표현해도 괜찮다”는
조용한 허락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꾸 사람을 기준에 맞추려 한다.
같은 속도, 같은 방식, 같은 방향을 기대한다.
하지만 숲을 떠올려 보면
어느 나무도 같은 높이로 자라지 않는다.
참나무는 참나무의 속도로 자라고,
단풍나무는 단풍나무의 색으로 빛난다.
숲을 가꾸는 일은
모든 나무를 같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각 나무가 자기답게 자라도록
햇빛을 비춰 주는 일이다.
교육도 그렇다.
밀어 넣는 일이 아니라
막힌 것을 풀어 주는 일.
바꾸는 일이 아니라
이미 그 안에 있는 가능성을
보이는 자리로 데려오는 일.
아이를 다 키워
내 역할이 한 겹 벗겨진 자리에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
교육은 지식을 전달하는 기술이 아니라
가능성을 신뢰하는 태도라는 것을.
어쩌면 좋은 교육은
아주 작은 한 문장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너는 아직
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