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걸어준 사람들

한 칸 생각

by 한칸생각


눈꽃이 유난히도 아름다웠던 태백산이었다.


온 산이 하얗게 화장을 하고, 나무마다 겨울의 시간을 머리에 이고 서 있었다.

그때 나는 마음이 많이 아팠다.
30년 넘게 다닌 회사를, 준비도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떠나야 했다.

괜찮은 척했지만, 마음은 자주 바닥을 쳤다.
그런 내 곁에 회사 동료였던 SC와 SJ가 함께해 주었다.

아무 말도 강요하지 않았고,
굳이 위로의 문장을 꺼내지도 않았다.

대신 “설산 구경 가자”는 짧은 제안과 함께
분위기 전환이라는 이름의 시간을 준비해 주었다.

그 마음이 얼마나 고맙고, 또 큰 위로였는지
그땐 다 헤아리지 못했다.

겨울 산행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눈 덮인 길은 발걸음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고,
차가운 공기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게 했다.

무리한 산행이었지만 끝까지 완주했다.

정상에서 마주한 풍경은 말이 필요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세상은 잠시 멈춘 듯 고요했고,
나는 그 고요 속에서 처음으로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대가는 있었다.
며칠 뒤 발가락이 멍들었고,
결국 두 개의 발톱이 빠졌다.

지금 생각하면 웃을 수 있는 일이지만
그만큼 그 산행은 몸에, 그리고 기억에 깊이 남았다.

그런데 어느덧 5년이 지났다.

사진을 다시 꺼내 보며 문득 미안해졌다.
그때의 감사와 감동을
내가 너무 쉽게 잊고 살아온 건 아닐까 싶어서다.

아픈 순간의 위로는 깊게 남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고마움을 일상 속에 묻어버린다.

눈 덮인 태백산을 오르고 내리며 느꼈다.

눈은 바닥에 무엇이 있든 상관하지 않는다.
돌이든, 흙이든, 상처든
모두를 하얗게 덮어버린다.

그래서 산은 잠시나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우리의 마음에도
그때의 눈처럼 흰 눈이 내려
힘들고 아름답지 못했던 기억들을
조용히 덮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아프지 않게 가려지는 방식으로.

다시 한번, 그날의 추억을 만들어준 동료들에게
늦었지만 마음 깊이 고마움을 전한다.

그 겨울, 태백산에서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