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아니면 안되는
오늘은 연차다.
평일에, 아이 보내고, 나만을 위해 쓰기로 한 귀한 하루.
이런 날 흔하지 않다.
그래서 더 철저히 계획했다.
아이 학교 데려다주고, 피부과 잠깐 들렀다가
혼자 커피 마시면서 글도 좀 쓰고,
그렇게 내 시간을 갖기로.
그런데 어제 밤, 남편이 갑자기 말한다.
“내일 에어컨 기사님 부르자. 더워지기 전에 설치해야지.”
나는 바로 싫다고 했다.
“내일 나 연차야.”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이다 보니,
하필 내가 쉬는 날 집안일을 맡기는 게
괜히 마음에 걸렸다.
괜히 눈치도 보이고,
내가 피부과를 가는 것도 마음이 불편해졌다.
근데 엄마가 말하신다.
“괜찮아, 내가 있을게. 기사님 오라고 해.”
그래서 찜찜했지만 그냥 넘겼다.
그리고 오늘 아침,
엄마가 갑자기 다리가 너무 아프다고 하셨다.
엉덩이 근육 쪽이 문제인지 걷기도 힘들다고.
병원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에어컨 설치기사님을 맞이하는 일은 내 몫이 됐다.
엄마가 갑자기 다리가 아프다고 하셨을 땐, 당연히 걱정이 앞섰다.
평소에 아프단 말도 잘 안 하시는 분이라 바로 병원 가자고 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일 때문에 오늘 일정이 조금 틀어졌더라도 괜찮았을 것 같다.
엄마니까.
내가 필요할 때 내가 움직이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근데 문제는 에어컨이었다.
내가 싫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결국 그 설치를 내가 맞이하게 된다는 사실이 너무 화가 났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나 혼자 기다리고 있어야 하고,
이 시간은 나를 위해 쓰고 싶었는데,
아무 의미 없이 흘러가는 기분이었다.
그게 오늘, 진짜 속상한 포인트였다.
피부과를 못 간 건 괜찮다.
그건 다음에 가면 된다.
하지만 내가 기다렸던 오늘 오전의 그 여유—
그건 오늘이 아니면 안 되는 거였다.
에어컨 설치는 아무 날이나 해도 되는 거고,
오늘은 내 거였는데.
그래도 어쩌겠나.
엄마는 병원 가시고,
아이도 학교에 가 있고,
남편은 출근했고,
결국 집에는 나 혼자 남았다.
그래서 생각을 조금 바꿔보기로 했다.
그래, 그럼 이건 홈카페 타임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내려서
주방 한 켠에서 글이나 쓰자.
기사님들은 거실에서 설치하시고,
나는 내 자리에서 나를 지키는 일.
생각을 바꾸면 기분도 좀 나아지겠지 싶었는데—
아니었다.
생각을 바꿔도, 화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다 이해해주고 싶지만,
오늘은 그냥 그런 날이 잘 안 된다.
그런 날도 있는 거다.
오늘은 그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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