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씹은 왜 그렇게 서운한가

회사에서의 침묵은, 감정보다 서열로 다가온다

by 한끗작가


회의를 마치고 조심스레 메시지를 보낸다.

“방금 안건 관련해서 정리해 봤습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읽었다는 표시가 떴다.

하지만 답은 오지 않는다.


처음엔 바쁘겠거니 넘긴다. 하지만 잠시 후, 다른 채팅방에서 그가 활발히 대화 중인 걸 알았다.

웃음 이모티콘, 빠른 피드백, 즉각적인 반응들.

그 안엔 내가 없다.




그때부터 이상하게 마음이 무거워진다.


회사라는 공간에서

‘읽씹’은 단순한 무응답이 아니다.

관계의 서열을 말없이 통보하는 방식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답을 받을 만한 사람’과

‘굳이 답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사이.

나는 지금 어디쯤인 걸까.




읽씹은 의외로 빠르게 사람을 위축시킨다.

메시지 하나에 그렇게까지 민감할 필요가 있냐는 말도 있지만,

그 하나에 존중받는 감각이 담겨 있을 때

침묵은 오히려 더 크게 들린다.


특히 위계가 존재하는 조직일수록,

이런 감정은 더 뾰족하게 다가온다.

말을 받는 쪽이 언제나 ‘아래’일 필요는 없지만,

‘받지 않는 쪽’이 언제나 ‘위’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건 답할 필요 없는 메시지다.”

상대가 의식했는지조차 모르지만,

그 판단의 대상이 나라는 사실은,

작지만 오래 남는 서운함을 만든다.




더 서러운 건, 그 어떤 자리에서도

이 감정을 말로 꺼낼 수 없다는 것이다.


‘저… 혹시 제가 뭐 잘못했나요?’라고 물을 수는 없고,

‘왜 답이 없으세요?’라는 말은 업무 외적인 예민함처럼 보일까 두렵다.


그래서 꾹 삼킨다.


회사에서의 읽씹은,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의 가장 작은 상처다.




읽씹이 서운한 건, 단지 무시당해서가 아니다.

무시해도 괜찮은 존재로 분류됐다는 묵언의 선포 때문이다.


특히 회사에서,

그런 분류는 곧 관계의 벽을 만든다.


읽씹은 회피가 아니다.

그건 조용한 서열이다.

감정을 뱉지 않아도, 사람을 나누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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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