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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기 Apr 18. 2021

노무현 대통령이 언론(기사)에 항의하는 방법

100가지 단상|노무현 대통령이 '인물연구 노무현'을 읽고 쓴 편지

※ 이 글은 2017년 제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인데, 기록 삼아 <브런치>에 옮겨온 것입니다.


2007년 9월 16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진행된 노무현 대통령과의 인터뷰. 오연호 대표기자와 나, 청와대 출입이었던 황방열 기자가 함께 했다. ⓒ 장철영, 청와대 제공


지난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생각을 다르게 해석한 <오마이뉴스> 기사에 대해 본인이 직접 글을 써서 반박한 적이 있다. 당시 편집국장이었던 나는 청와대 홍보수석실 관계자에게 '노무현의 편지'를 전달받아 검토한 뒤, 원문 그대로 실었다. 현직 대통령이 인터넷매체에 본인이 직접 쓴 글을 기고한 건 전무한 일이었다.


지난 2002년 대선을 치른 뒤 <오마이뉴스>는 오랫동안 '친노 매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녔다. <오마이뉴스>의 기사가 '사실이냐, 거짓이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마이뉴스>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겐 '친노 프레임'이 만병통치약이었고, 도깨비방망이였다. 


최근 들어와서 <오마이뉴스>는 일부 문재인 지지자들에겐 '안빠', 일부 안철수 지지자들에겐 '문빠'라는 비판을 받는다. 일관되게 '노빠'로 취급될 때보다는 비판의 스펙트럼이 다양해졌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랄까. 간혹 '조중동'에 빗대 '한경오'라는 조롱을 받기도 한다. 


분명, 반성할 대목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과 다른 비난에 대해서 비굴하게 고개 숙이는 건 언론의 할 일이 아니다. 언론이라면 '겸손하되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되 자만하지 않는'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앞으로는 '묻지마 몽둥이'가 아니라, 사실에 근거한 진짜 아픈 지적과 회초리를 맞고 싶다.


상념이 많아지다보니 문득, 노무현 대통령이 <오마이뉴스>에 직접 기고했던 글이 떠올랐다. 노 대통령은 본인의 생각과 다른, 본인의 생각을 다르게 해석한 언론 기사에 대해 정중하게 반박 글로 해명하고 항의했다. '겸손하되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되 자만하지 않는' 태도를 견지하면서. 개인적으로는 여러차례 곱씹으며 읽어봤던 글이다.


여담이지만,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의 이 글을 <오마이뉴스>에 보내면서 게재 여부는 전적으로 <오마이뉴스>의 판단에 맡기라고 했다는, 노 대통령의 메시지를 덧붙였다. <오마이뉴스>는 자체적으로 판단했고, 원문을 그대로 실었다. 권력과 언론의 긴장 관계는 '육박전'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 스크롤 압박이 심하겠지만, 전체 맥락에 대한 이해를 돕기위해 기사 전문을 그대로 옮긴다.

  

2007년 9월 2일 청와대 관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인터뷰를 한 뒤  점심식사를 마치고 뒷산에 마련된 데크에서 차를 마셨다. ⓒ 장철영, 청와대 제공


"패배는 있지만, 패배주의란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인물연구 노무현'을 읽고 쓴 편지

07.10.16 17:55


노무현 대통령이 오연호 기자가 연재중인 '오연호리포트-인물연구 노무현'을 읽고 나서 쓴 편지를 최근 <오마이뉴스>에 보내왔다. 이 편지는 '인물연구 노무현' 세번째 편인 "연정 제안하면 한나라 당황할 줄 알았다. 수류탄 던졌는데 우리 진영에서 터져버려"에서 거론한, "노 대통령이 한나라당과 대연정을 시도한 것은 패배주의와 성급한 성과주의"라는 해석에 대한 노 대통령의 반론을 담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원문을 그대로 게재한다. [편집자말] 


오연호 기자, <오마이뉴스>에 연재하고 있는 나에 대한 기사를 잘 보고 있습니다. 글이 좋습니다. 능력이 참으로 부럽습니다.


다만 항의가 될 지 반론이 될 지, 지적을 해두고 싶은 한 대목이 있습니다. 바로 '패배주의', '성급한 성과주의'라는 대목입니다. 근거가 충분하지 않은 규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민주당의 상황으로 보아 2004년 총선에서 승리하기가 어렵다고 보고 있었다. 그 이후에도 계속하여 정국을 끌고가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보고 있었다. 고통스러웠다. 당시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었다." 아마도 이런 말을 근거로 패배주의를 추론한 것 같습니다. 


총선 승리가 어렵다고 생각한 것, 정국을 끌고가기가 어렵다고 생각한 사실을 패배주의의 근거로 보았다면 그것은 논리의 비약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다음 선거에서 승리가 어렵다고 본 것은 패배주의일 수도 있지만, 미래를 객관적으로 보는 냉정함일 수도 있고, 미래에 닥쳐올 상황을 미리 예견하고 준비를 해 두고자 하는 용의주도함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객관적 예견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한 것 아닐까요?


정국을 끌고가기가 어렵다는 인식 역시 객관적 상황에 관한 인식일 뿐 이로 인하여 국정운영에 자신감을 잃고 있었다거나 패배주의에 빠져 있었다고 볼 근거가 되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정국을 끌고가기가 어렵다는 말을 자주 강조한 것은 우리 정치제도와 문화가 이대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지 내가 국정운영에 자신이 없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나는 대통령제, 지역구도 다당제, 여소야대의 일상화 등으로 인한 이원적 정통성의 문제, 책임정치가 불가능한 정치구조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 왔고, 이들 문제의 해결을 위해 지역구도 해소, 대연정 등의 타협주의 정치를 제안해 왔습니다. 내가 정국운영이 어렵다고 강조한 것은 크게는 이런 문제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고통스러웠다'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었다' 이런 이야기는 재신임을 물을 당시의 상황이었는데, 당시는 정국운영의 어려움 때문에 고통스럽거나 위축돼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대선자금 수사와 나의 측근이 받은 정치자금 문제가 공개된 데 따른 것입니다. 


당시 나는 이 문제로 부끄럽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정말 대통령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특별한 시기의 특수한 상황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국정운영에 대한 자신감과는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아울러 대연정 제안과도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사실들을 근거로 일반적으로, 또는 대연정 제안 당시 국정운영에 대한 자신감을 잃고 있었다고 판단하고, 이를 패배주의로 규정하는 것은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내가 인터뷰를 할 때 미래에 대한 비관적인 예측, 국정운영의 어려움, 특수한 시기의 고통과 위축 등의 이야기와 지역구도, 여소야대 등으로 인한 정치제도와 문화에 대한 문제점을 뒤섞어 이야기함으로써 오 기자로 하여금 혼선에 빠지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런 이야기들을 그냥 묶어서 패배주의로 규정한 것을 흔쾌히 수용하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 동안의 나의 정치역정과 비교해 보면 너무 어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20년 정치 생애에서 여러 번 패배했지만, 한 번도 패배주의에 빠진 일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일일지는 모르나, 나는 항상 몇 해 앞의 상황을 미리 가정해 보고 대응책을 생각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이것까지 고려해 준다면, 다가올 선거의 결과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을 가지고 여러가지 대응책을 준비하는 것은 패배주의가 아니라 세심함이나 용의주도함, 또는 멀리 보는 안목의 근거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대연정 제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후보 시절부터 준비한 것입니다. 우리 헌정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문제의식은 그만큼 오래된 것입니다. 이 문제의식은 당선 이후에 더욱 깊어져서 최근 청와대 참모들이 '한국정치 이대로는 안 된다'라는 책으로 정리해 내놓을 수준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지역구도 해소는 나의 필생의 정치 목표입니다. 나는 여기에 내 모두를 걸었습니다. 결국은 그 때문에 대통령이 되었으나, 정작 나는 아직도 이 목표를 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나는 국민들이 어떤 평가를 하든, 이 문제가 해결되거나 큰 진전이 있기 전에는 스스로 성공한 정치인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후보가 되고부터는 동거정부, 대연정 등의 대타협의 정치가 아니고는 우리 정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역구도 해소와 대타협의 정치를 위해서는 어떤 댓가라도 지불할 생각으로 정치를 해 왔습니다.  동거정부 구상, 대연정 제안, 개헌 주장 등 모두가 이 목표를 위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 대통령의 권력을 거는 것은 결코 패배주의의 결과도 아니고 성급한 성과주의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또한 나의 정치역정 전체를 꿰뚫고 분석해 보아야 이해가 될 수 있는 문제일 것입니다.


반론으로서의 논리가 부족할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떻든 사실은, 패배주의나 성급한 성과주의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좀 야박하게 따지는 것 같은 글이 되었습니다. 시비조의 글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도 재주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어차피 이렇게 되었으니 기회가 되면 시비논쟁을 한 번 합시다. 내 생각은, 패배주의라는 해석은 오 기자가 생각을 고쳐주시고, 그리고 나의 다른 약점을 찾읍시다. 더러, 아니 많이 있을 것입니다. 패배주의, 한건주의는 내가 너무 아프게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건강하시고, 건투하시기 바랍니다. 


2007년 10월 12일

대통령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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