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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기 May 08. 2021

펜화로 그린 우리나라, 명불허전 '비행산수(飛行山水)'

100가지 단상|자칭 '삽자루' 안충기의 <비행산수 飛行山水>


자칭 '삽자루' 안충기 선배가 최근 펴낸 책 <비행산수 飛行山水>(동아시아). 어제 실물을 영접했다. 책이 스케치북 사이즈다. 일반 단행본보다 세 배쯤 크다. 놀랐다. 내가 샀던 책 가운데 가장 큰 사이즈. 정작 책을 펴서 그의 펜화 그림을 보면 오히려 책의 판형이 좀더 컸으면 하는 아쉬움이 드니, 이 또한 놀랍다.   


이 책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해 9월 22일 펜화가 안충기의 <비행산수> 전시회를 보고나서 적어두었던 감상문으로 대신한다. 그의 펜화를 직접 본 사람들은 이 책의 고마움을 잘 안다. 곁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안충기의 펜화를 들춰볼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으니까.


이 책은 안 사면 손해, 사면 개이득이다.


안충기 펜화가. ⓒ 권혁재 <중앙일보> 사진전문기자


안충기 선배의 <비행산수> 개인전을 보고난 뒤 느낀 점을 적어봅니다.  


1. 점(点) 선(線) 면(面)


점이 이어지면 선이 되고, 선이 빼곡하게 차면 면이 된다. 면은 선에서, 선은 점에서 태어났다. 선과 면의 출발은 하나의 점(spot)으로부터 시작한다. 안충기의 펜화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정교함, 그 정교함을 이끌어낸 인내가 그렇다. 한 발 더 나아가 한 작품 한 작품에서 선과 면을 이룬 수많은 점들을 본다면, 결과물에 대한 감탄에 앞서 과정에 대한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


2. 자초한 손가락 기형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 사진을 처음 봤을 때 놀랐다. 모든 발가락이 옹이처럼 울퉁불퉁했다. 토슈즈에 가려져 있었던 그 발이 강수진의 발레 역사 그 자체였다. 권혁재 <중앙일보> 사진전문기자가 찍은 안충기의 오른 손가락 사진을 보면 자초한 기형이다. 엄지는 구멍난 듯하고, 중지의 중간 마디에는 굳은살이 혹처럼 볼록 튀어나왔다. 안충기의 손가락은 그의 펜화 그 자체다.


3. 아트전문기자인 '삽자루'


그는 페이스북에서 '삽자루'라는 별칭으로 더 익숙하다. 페북에는 펜화 이야기보다 주말농장 이야기가 더 많을 때도 적잖다. 안충기는 현직 <중앙SUNDAY> 아트전문기자다. 그리고 펜 화가다. 비행산수(飛行山水) - 하늘에서 본 국토. 내일(23일)까지 열리는 안충기 펜화 전시회 제목이다. 이 주제는 6년째 <중앙SUNDAY>에 연재하는 코너 이름이기도 하다.


4. 같으면서도 다른, 다르면서도 같은


오늘 작품 전시회장에서 만난 그에게 평소 궁금하던 걸 물어봤다. 한 도시를 '부감'으로 그려내려면 단순한 기억만으로는 불가능할텐데 어떻게 그리냐고. 항공사진이건 자료사진이건 모을 수 있는 관련(사진)자료를 최대한 다 모은단다. 그렇게 해도 막상 그림을 그리면 '빈 공간'이 생기는데, 그건 (개연성 있는) 작가적 상상과 작품 경험으로 채워낸다고. 사실과 같으면서도 다른, 다르면서도 같은 안충기의 펜화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5. 안충기 펜화, 안내자의 시선


소설에 '화자(話者)'가 있듯이, 안충기의 그림에도 시선의 방향을 이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안내자가 있다. 그의 대표작인 <강북전도>(251cm×72cm)는 4폭이 하나의 그림으로 연결된 작품이다. 맨 왼쪽 그림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맨 오른쪽 그림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걸어가면서 보이는 풍경을 묘사한 것이란다. 원근법을 하나가 아닌 여러 시선과 각도에서 살려냈기에 단조롭지 않고, 자연스러운 역동성이 살아있다.


<중앙SUNDAY>에 실린 [안충기의 삽질일기] 난 한 놈만 팬다, 찍기의 기술 10가지. 사진찍는 구도에 관한 글이지만, 본인 그림의 안내자 시선과 같은 맥락으로 읽히는 대목이 있다.


"주인공을 화면 어디에 놓을지 누구나 고민한다. 대개는 가운데 놓고 찍는다. 그러면 정직해 보이는데 어딘가 답답하다. 나는 두 가지를 생각한다. 먼저 마음속으로 화면에 井(우물 정)을 그린다. 화면을 가로세로 삼등분한 뒤 주인공을 선과 선이 만나는 지점에 놓는다. 대상이 중심에서 살짝 비켜나면 여유와 여백이 생긴다. 빡빡하고 골치 아픈 세상에 사진이라도 숨통이 트여야 하지 않을까.  


다음으로 찍을 대상에 들어있는 선을 찾는다. 없으면 만든다. 대상에는 수평·수직·대각선과 원·타원·삼각형·사각형 같은 다양한 도형이 들어있다. 풍경이든 사람이든 기준선을 먼저 봐두고 그를 중심으로 주인공을 배치하면 그럴싸하다. 수평 맞추기도 그중 하나다. 대충 그렇다는 얘기다. 직감으로 찍고 사진을 재단하며 이런 기준에 맞추는 경우도 많다." (2019.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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