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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기 Jun 14. 2020

두두의 독특한 문화실험 일요일 '낮술낭독회'

100가지 단상|대학로 우리술전문점 '두두'


만원의 행복.


딱 이 말이 맞다. 대학로 우리술전문점 '두두'에서는 매달 첫 번째 일요일마다 '낮술낭독회'를 연다. 4개의 주제로 나눴는데, 시-(단편)소설-희곡-(단편)영화 상영 순이다. 4개월마다 한 바퀴 돈다. 영화 상영 때만 '낮술상영회'라는 이름을 쓴다.


어제(1월 5일) 올해 들어 처음 열린 낮술낭독회에 참석해봤다. 누적 횟수는 이번이 다섯번째. 일인당 회비는 만원. 이번달 주제는 '시'였다. 영화 상영 때를 제외하고는 참석 인원은 10명 선으로 제한한다. 그 인원을 넘어서면 진행·토론·대화가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란다. 가끔 작가나 감독, 배우가 올 때도 있다.


소요 시간은 2시간 가량. 두두 박민우 대표와, 박 대표의 지인인 소설가 김봄이 기획·준비를 한다. 참석 인원에 맞게 시를 선정한 뒤, 참가자들이 낭독할 수 있도록 프린트해 놓는다. 가급적 요즘 시인의 시를 고르고, 너무 무겁지 않고, 짧은 게 좋다는 정도의 기준만 갖고 있다. 일주일 전부터 준비에 들어간다.


예전에는 오후 2시에 시작했다는데, 이날은 낮 12시로 당겼다. 나는 박 대표를 제외한 다른 참석자들과는 초면이었다. 낮술낭독회이니 만큼 '낮술'과 '낭독' 모두 중요하다. 돼지고기 수육과 김치·낙지젓갈, 풀무원 두부와 새우젓, 유채나물무침, 청포도와 귤 등 안주가 끼니가 될만큼 푸짐하다. 무엇보다 정성이 묻어난다.


술도 하나씩 나왔다. 산천어생막걸리, 산소막걸리 순수령, 희양산막걸리, 백련막걸리, 가평잣햅쌀1872, 곤드레생막걸리, 호랑이배꼽막걸리, 봇뜰탁주 등 셀 수 없을만큼 다양하게 나왔다. 일인당 회비 1만원으로 이처럼 푸짐하게 술과 안주를 내놓으니, 이것만으로도 주인 입장에선 남는 게 없는 게 아니라 마이너스다.


힘들게 준비하고, 술과 안주를 손해보면서까지 '낮술낭독회'를 하는 까닭이 궁금했다. 박민우 대표는 간단하게 답한다. "재밌어서요." 낮술낭독회를 준비하는 게 즐겁고, 모르는 사람들과 만나 시와 소설과 영화를 이야기하는 게 재밌단다. 한 달 가운데 가장 즐겁게 맘놓고 쉬는 날이 낮술낭독회가 열리는 날이라고.


박 대표가 낮술낭독회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건, 지난해 너무 장사에만 신경을 쓰다보니 정작 재미가 줄어들어서란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쯤은 재미있는 일을 벌여봐야겠다고 작심하고, 소설가 김봄과 작당을 시작한 것이다.


2월에 열리는 두두의 '낮술낭독회'의 주제는 단편소설이다. 모집은 박민우 대표가 개인 페북에 15일 전후쯤 올린다. 물론 박 대표를 아는 사람은 문자로도 신청한다. 공정하게 접수하기 위해서 참석자는 선착순 입금으로 정한다. 공지 후 삼사일 정도면 마감된다고.


박 대표는 올해 '낮술낭독회'를 더 의미있고 재밌게 가꿔나가기 위해서 내심 꿍꿍이를 꾸미고 있다. 그 꿍꿍이는 두두와 낮술낭독회의 팬들에게는 또다른 선물로 다가올 것이다. 오래 전 고인이 된 전우익 선생의 책 제목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가 딱 박민우 대표의 심정을 대변해주는 것 같다.




※ 1월 5일에 열린 두두의 낮술낭독회에서 나는 이날 김수영 시인의 '봄밤'(1957년 作)을 낭독했다. 그리고 낮술낭독회가 끝난 뒤 몇 분과 두두에서 한 잔 더, 혜화동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한 잔 더, 한성대 부근 포차식 술집에서 한 잔 더... 현재 낮술낭독회는 코로나19 여파로 잠심 중단됐다. 코로나19는 사라지고, 낮술낭독회는 살아나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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