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가지 단상|내가 사랑하는 시
가끔씩, 불쑥 마종기 시인의 '우화의 강'이 떠오를 때가 있다. 아주 오래 전 월간지 기자일 때 좋아하던 선배가 '툭' 건넨 시집이 마종기였다. 내가 제대로 읽은 몇 권 안 되는 시집 가운데 하나. 물길/강물/물살... 강이니 물이겠지만, 강이니 길이겠지만...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 없이 흐르고 있으랴". 그렇다고, 의미 없이 흐르는 작은 강이면 또 어떤가.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 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이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 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어야겠지만
한 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의 흔할 수야 없겠지.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 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과 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