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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기 Jun 16. 2020

용인|<고기리막국수> '비빔장'과 '사리'에 담긴 배려

100가지 단상|손님 배려가 몸에 밴 <고기리막국수>


배려(配慮)의 한자는 '짝 배(配)', '생각할 려(慮)'다. "짝을 대하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생각한다"는 뜻이다. 배우자(配偶者)의 '배'도 '짝'이라는 뜻이다. 배우자의 사전적 의미는 "부부의 한쪽에서 본 다른 쪽. 남편 쪽에서는 아내를, 아내 쪽에서는 남편을 이르는 말"이다.


흔히 음식점에서 '가족처럼~', '엄마의 마음으로~'라고 말하는 바탕에는 '배려'가 있다. 가게 이름에조차 어머니, 할매, 이모, 고모, 삼촌이 심심찮게 등장하는 것도 '가족을 배려하듯이 손님을 배려하겠다'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다. 물론 그 가게에 그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느냐는 별개다.


<고기리막국수>는 손님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밴 가게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아기국수'를 무료로 내주는 것이나, 손님의 신발이 분실되면 이유불문하고 가게에서 책임지고 변상해주는 것이 대표적이다. 막국수 가격 또한 7년째 동결했다가 8년차에 들어와서야 조심스럽게 1000원을 올렸다.


그런데 내가 본 <고기리막국수>의 진짜 배려는 다른 데 있다. 그건 음식에 대한 배려다. 아는 분은 알겠지만, <고기리막국수> 유수창 대표는 고집도 세고, 낯가림도 심한 편이다. 그런데 잘 들여다보면 전형적인 '츤데레'다. 음식에 비유하자면, '겉바속촉' 스타일.


고기리 '비빔막국수'는 매운 듯한 강한 빨간색의 양념이지만, 정작 비벼서 먹어보면 아주 매운 맛은 아니다. 맵기를 고추 숫자로 표현한다면, 고추 하나에 해당된다. 그리고 신나게 먹고나면 속이 쓰려 고생하는 매운 맛은 더더욱 아니다.


실제 아이들도 고기리 비빔막국수를 즐기고, 매운맛에 익숙치 않은 어른들도 고기리 비빔막국수는 거부감을 덜 갖는다.


<고기리막국수>의 비빔막국수. 비빔장이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맛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몇 해 전, <고기리막국수> 부부와 얘기하다가 그 비결을 들었다. 유수창 대표가 오래 전에 위 수술을 했단다. 그 이후로 위에 자극을 주는 매운 음식은 금기.


그때 유 대표가 생각한 건 '나같은 사람이 먹어도 위에 부담스럽지 않은 비빔막국수'였다. 그렇게 탄생한 게 고기리막국수의 비빔양념이다. 무의식적으로 몸에 밴 배려다.


무료인 아기국수는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고기리막국수>의 '사리'에도 주인장의 음식 철학이 오롯이 담겨져 있다. 우선 물막국수를 먹고 비빔막국수 사리를 시킬 수 있게 교차 오더를 허용했다. 반대도 마찬가지.


사리 값은 절반 가격인 4000원. 그런데도 막국수 중량은 300g으로 똑같다. 게다가 물막국수에는 육수가, 비빔막국수에는 양념장이 함께 나온다.


그럼 메인 막국수와 사리의 차이는 무엇일까? 사리에는 메인에 들어가 있는 고명인 지단, 오이, 배가 올라가지 않는다. 사실상 말이 사리지, 거의 똑같은 한 그릇의 온전한 막국수다. 난 이게 참, 영리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사리를 메인처럼 내주면서도 고명을 뺐다. 같으면서도 다른, 다르면서도 같은. 완전히 똑같게 하지 않아, 사리를 시키지 않는 손님에게는 질투를 줄여주면서 자존심을 세워줬다.


반면, 사리를 시키는 손님에게는 고명만 없을 뿐이지 온전한 한 그릇이라는 만족감의 실리를 안겨줬다. '질'과 '양'의 절묘한 경계선에서 가르마를 탄 것이다.


<고기리막국수>의 물막국수. 오른쪽이 '사리'다. 가격은 절발이지만 면의 양을 똑같다.


<고기리막국수> 김윤정 대표가 생각하는 '사리' 철학은 이렇다.


"제가 생각하는 사리는 국수 좋아하시는 분들이 배 두드리도록 드시고 가는 겁니다. 한 그릇 드셨는데 더 드시고 싶을 때. 비빔으로 먹었는데 물막국수도 맛 보고 싶으실 때 주저없이 드시라고. 사리라고 해서 앞 접시에 양념없이 면만 내 주는 것도 싫고, 사리인데도 값이 생각보다 비싸서 아쉽지만 담에 먹지 하고 되돌아가시게 하고 싶지 않아서."


배려는 남이 시켜서, 머리로 생각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몸에 배어야 되고, 가슴을 먼저 열어야 한다. 굳이 '역지사지(易地思之)'라고 의식하지 않아도, 그 행동이 '역지사지'로 나타나는 것. 그런 배려가 값지고, 손님의 뇌리에 오래 남는다.


<고기리막국수> 유수창 대표(왼쪽)와 함께.
<고기리막국수> 김윤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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