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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기 Nov 15. 2021

가을 풍경이 남아있는 '안산 자락길' 걸어보니

서울|서대문구 '안산 자락길'


그제 걸었던 안산 자락길의 풍광. 입동(立冬)이 지났는데, 여전히 가을의 경치가 남아 있다. 이주일쯤 지나면 완연한 초겨울 풍경으로 바뀌지 않을까 싶다. 안산 자락길은 봄, 여름, 가늘, 겨울에 한 번씩은 가보고 싶은 곳이다. 다음 번에는 삼봉 정도전이 썼다는 <봉원사> 명부전(冥府殿)의 편액도 보고, <연희김밥> 본점도 가보고 싶다.

  

대학 4학년 때 이대 후문 맞은편 언덕배기에 있는 봉원사 부근에서 자취를 했다. 선배가 쓰던 방이었는데 물려받았다(?). 물론 자취비는 내가 냈다. 태고종 총본산인 봉원사 스님 소유의 집이었다. 스님의 어머니는 아들을 항상 '우리 스님'이라고 지칭했다. 스님의 딸은 나보다 한 학번 위인 이대생이었다. 제대로 말 한 번 섞어보지 못했다. 내가 너무 늦게 들어가 얼굴을 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안산(鞍山)|무악산으로도 불린다. 서울시 서대문구에 있으며 높이는 295.9m. 산의 생김새가 말이나 소의 등에 짐을 싣기 위해 사용한 길마와 같이 생겼다 하여 길마재라고도 하며, 모래재, 추모련이라고 불렀다. 정상에 봉수대가 있어 봉우재라고도 불러왔다.


조선시대에는 어머니의 산이라고 해서 모악산(母岳山)이라고 불렸다. 호랑이가 출몰하기 때문에 여러 사람을 모아서 산을 넘어가야 했기에 모악산라고도 불렀다는 설도 있다. 역사적으로는 조선이 건국되고 도읍을 정할 때 하륜(河崙)이 안산 남쪽을 도읍지로 추천하였다. 조선시대 인조 때인 1624년 이괄(李适)이 반란을 일으켜 전투를 벌였던 곳으로 유명하며 한국전쟁 때 서울을 수복하기 위한 최후의 격전지였다.


서울시내 중심에서 홍제동으로 향하는 통일로를 사이에 두고 인왕산(해발 340m)과 마주하고 있으며 서대문독립공원, 이진아도서관이 위치한다.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는데 평안도에서 올라온 봉화가 안산에 연결되어 최종 남산으로 연결되었다. 정상 부근에는 큰 바위들이 많고 서울시 중구 일대를 관망하는 전망이 뛰어나다.


태고종의 총본산인 봉원사(奉元寺)가 남쪽에 있으며 관음보살을 닮았다는 관음바위가 유명하다. 그리고 근래 새로운 모습으로 보수한 봉수대(서울특별시 개념물 제13호) 등을 볼 수 있다. 수맥이 풍부한 27개의 약수터가 있어 등산로가 발달하였다. 옥천약수, 백암약수, 맥천약수, 봉화약수 등이 유명하다.|<두산백과> 



봉원사의 역사는 신라 진성여왕 시대에 도선국사가 현재 연세대 터에 창건하고 반야사라고 이름을 지으면서 시작됐다. 조선시대 영조 24년(1748)에 찬즙, 중암 스님이 지금의 자리로 옮겼고, 영조는 친필로 봉원사라고 쓴 현판을 내렸다. 한국전쟁 때 영조의 친필 현판이 소실됐다.


안산 자락 신촌 일대는 조선을 개국하고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궁궐이 들어설 후보지 중 한 곳이었다. 당시 정도전, 무학대사, 하륜 등이 궁궐터를 물색했는데 하륜이 안산을 주산으로 하고 현재 연세대를 비롯한 신촌 일대에 궁궐이 들어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결국 정도전의 주장대로 지금의 경복궁 자리에 궁궐이 들어섰다.


봉원사 명부전 편액은 삼봉 정도전의 글씨다. 봉원사 경내에 있는 명부전 편액은 조선의 기틀을 세우고 문을 연 삼봉 정도전의 글씨다. 또 이곳은 1908년 국어연구학회(한글학회)가 창립된 곳이기도 하다. 조선말 흥선대원군이 머물렀던 공덕동 별장 건물 부재를 그대로 옮겨와서 지은 건물도 보인다.|한국관광공사의 <아름다운 대한민국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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