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한기택'이라는 판사... 공직자란 어떠 해야 하는가?

'목숨 걸고 재판하는 판사'였던 사람

by 이한기


"저는 아버지 관용차에 한 번도 타본 적이 없습니다. 이 차는 출퇴근할 때 쓰라고 주는 것이라며 단 1미터도 태워주지 않으셨던 것이 저는 답답했습니다."|그 판사의 딸


그 판사는 동네 주민이 인사차 사온 '델몬트 주스' 2병도 '버럭' 하고 받지 않았습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법 얘기를 물어올 때마다 남편은 한사코 그런 이야기를 듣지 말라고 했어요. 판사는 개인적으로 법률 상담을 해선 안 된다는 거였어요."|그 판사의 부인


"그 분이 판사였다는 사실을 부음기사를 보고 알았습니다. 성당 사람들 모두 그가 판사였다는 사실도, 어떤 일을 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하고 있었어요."|그 판사가 다니던 성당 수녀


2005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한기택 판사는 "목숨 걸고 재판하는 판사"로 통했습니다. 사건 기록을 싸들고 출근하기 전까지 읽고 또 읽었습니다. 몸이 망가져도 말입니다. "내 재판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이 없도록 해달라"고 기도했던 그의 판결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언론에 보도된, 생전 그의 판결은 이렇습니다.


△가혹 행위로 정신병을 얻은 전역자를 국가유공자로 인정 판결 △재벌가 결혼 축의금에 대한 증여세 부과 정당 판결 △고위공직자가 직계 존·비속의 재산등록을 거부할 경우 그 사유와 거부자 이름을 공개하라는 판결 △황사 많은 날 근무하다 사망한 환경미화원 업무상 재해 판결


△비장애인 '직업 선택의 자유'가 시각장애인의 '생존권'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 자격증을 주는 것에 대한 위한 위헌 소에서 '안마사에 관한 규칙' 위헌이 아니라고 판결 △한국인과 결혼한 중국인 배우자의 중국 현지 성인 자녀에 대한 한국 초청 금지는 평등권 위배 판결


과거의 게시 글을 보다가 2015년 <엠빅뉴스> 베스트 클릭에 오른 게시물 '한기택(1959~2005) 판사'의 이야기를 다시 보게 됐습니다. '공직자란 무엇인가'를 몸소 실천으로 보여준 그는 조영래 변호사와 더불어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펴낸 <판사 한기택>(궁리, 2006)이란 책이 있어 사려니 '절판'돼서, 중고책을 주문했습니다. 이런 분들이 많아지길 소망합니다.


※ 첨부한 이미지는 <엠빅뉴스>가 만든 것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허영만의 '취재노트'와 강수진의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