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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기 Aug 31. 2020

"살암시민 다 살아진다"... 제주 해녀의 위로 한마디

100가지 단상|서명숙의 책 <숨, 나와 마주 서는 순간> 다시보기

숨이 물질을 좌우하는 본인의 기량이라면, 물때와 바람은 외부의 조건이다. 아무리 숨이 길고 물질 실력이 뛰어난 대상군이라 할지라도 물때와 바람을 거역해서는 안된다. ⓒ 강길순


"살암시민 다 살아진다(살다보면 다 살게 된다)." 


코로나로 다들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때, 문득 이 제주도 말이 떠올랐습니다. 지치고 힘들 때마다 서명숙(제주올레 이사장)을 버티게 해주었다는 해녀 삼촌들의 한마디입니다. 


서명숙의 책 <숨, 나와 마주 서는 순간> 서평을 쓸 때 기사에도 인용했습니다. 지금까지도 여운이 남는데, 다시금 읽어보니 해녀 삼촌들의 고단한 삶이 더 가까이 다가옵니다. 기사를 쓰면서 인상 깊었던 몇 대목을 옮겨봅니다. 궁금한 분은 맨 아래 기사 링크를 클릭해 전문을 읽어보시고, 더 궁금한 분은 <숨, 나와 마주 서는 순간> 책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


해녀학교를 다니면서 누구는 해녀의 꿈을 더 단단하게 다졌노라고 했고, 누구는 생각보다 물질이 너무 힘들어서 낭만적인 꿈을 접기로 했다고 말했다. ⓒ 강길순



"숨을 쉬어야 사람은 산다. 그러나 숨을 쉬면 안 되는 직업군이 있다. 다름 아닌 해녀들이다. 스킨스쿠버들과는 달리 공기통이나 호흡기 등 기계의 도움없이 오로지 자기 호흡만으로 물질하는 해녀들에게 '숨'은 곧 목숨이다. 행여 깊은 바닷속에서 숨을 참지 못하고 '물숨'을 쉬면 자칫 죽음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물숨'은 해녀들에게는 금기어나 다름없다." (p160)



(입으로 쉬는) 물숨은 죽음을 뜻하지만, 해녀들은 바닷속에서 다른 숨을 쉰단다. 가파도에 사는 70대 해녀 할망의 말이다. "물에 들어갈 때 쉬는 숨이 있고, 물건을 잡을 때 쉬는 숨이 있고, 나올 때 쉬는 숨이 있어요. 한 번 물에 들어가면 15~16번 정도는 숨을 쉽니다. 입으로 내쉬면 물을 먹게 되니까 가슴으로만 쉬지요. 물밖으로 나와서 진짜 입으로 내쉬는 거지." 물밖으로 나와 비로소 숨을 쉬며 내는 소리를 '숨비 소리'라고 한다. "호오이, 호오이~."



육지 사람에겐 낯설지만, 제주 해녀들에게는 정겨운 단어가 '불턱'이다. 해녀 문화를 잘 보여주는 불턱은 말 그대로 '불을 쬐는 곳'이다. 해녀들은 이곳에서 해녀복을 갈아입고, 중간에 휴식도 취한다. 뿐만 아니다. 물질이 끝나면 도란도란 둘러앉아 몸을 녹이며 수다를 떠는 사랑방 역할도 한다. 


작업 일정에 대한 논의부터 소소한 집안 이야기와 동네 소문들까지 오가는 불턱 사랑방에는 한 가지 불문율이 있다. '불턱에서 나눈 이야기는 절대 밖으로 옮기지 않는다'는 것. 자유롭게 이야기하되, 갈등의 불씨는 없애는 해녀 공동체의 지혜다.


해녀학교를 다니면서 나는 바다라는 놀라운 신세계를 접하게 되었고, 바다에서 노는 즐거움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 강길순
2014년 마지막날, 신산리를 지날 무렵, 길순 언니가 소리쳤다. "아이고, 저기 테왁 좀 보라게. 새해 첫날부터 해녀들 물에 들어갔저." ⓒ 강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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