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안아주는 작은 세계
많은 아이들이 애착 이불이나 애착 인형처럼,
보드랍고 체취를 머금을 수 있는 패브릭을 곁에 둔다.
하지만 이안이에게는
특별한 애착 인형도, 애착 이불도 없다.
어쩌면 이안이에게 나는
그 모든 역할을 대신하는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이가 태어난 이후 15개월 동안
단 한 순간도 아이를 곁에서 떼어놓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떼어놓지 않은 게 아니라
떼어놓지 못한 나였다.
내게는 나만의 시간이 없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건 나를 지우고 사는 일이었다.
그때는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한다고 믿었고, 그러고 싶었다.
그 외의 선택은 생각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서서히 시들어갔다.
우울증이라는 건
겉으론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속을 서서히 파먹는 병이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무기력하고 무감각한 상태로 머물러 있었다.
물론,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자랐고
그 모습은 말로 다 할 수 없이 사랑스러웠지만,
엄마인 나는 웃으며 감탄하면서도
‘나’로서는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그 시절의 나에게는
나만의 시간, 나만의 공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나는 조금씩 ‘한 켠’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아이가 유난히 힘든 날에는
아이를 안은 채 잠시 시선을 멀리 두고 식물들을 바라보았고,
아이가 잠이 든 밤이면
초를 켜고 글을 쓰거나 명상을 했다.
그렇게 내 마음 한 켠을
조금씩 나를 위해 비워두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서서히
하고 싶은 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고,
감동이 다시 찾아왔다.
그 한 켠은,
지친 나를 일으킨 작은 세계였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른이 된 후에도,
마음을 안아주는 애착이불 같은 ‘한 켠’이
우리에겐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