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고성은 고요한 호수와 푸른 바다를 보면서 마음을 다시 잡을 수 있는 곳, 밤에는 불빛이 일찍 꺼져 밤의 고요를 느낄 수 있는 곳, 그래서 적당한 쓸쓸함을 안겨주는 곳이다.
고성을 거닐면 “달홀(達忽)”이라는 명칭을 자주 볼 수 있다. 달홀은 높은 성이라는 뜻의 예스러운 멋을 느끼게 해주는 고성의 옛 이름이다. 강원도 최북단임에도 고성은 교통이 편리한 지역이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지형인 이유로 해안도로를 따르기만 하면 고성의 이름난 곳을 대부분 둘러볼 수 있다. 이름부터 옛날의 정취가 풍겨 나오는 고성으로 간다.
가을과 함께 산과 바다와 호수의 아름다운 풍경을 모두 간직한 고성에 들었다. 아름다운 경치를 간직한 청간정에서 고성의 일기를 시작한다. 청간정은 고성의 초입에 있어 고성을 들를 때마다 처음으로 찾는 곳이다. 울산바위와 신선봉 사이의 미시령 계곡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청간정 아래의 청간천을 따라 바다로 흐른다. 청간천에는 물고기가 한가롭게 파문을 그리며 논다. 나지막한 산 정상에 있는 청간정에 올랐다.
청간정과 그곳에서 보는 풍경은 관동팔경의 첫 번째다. 푸른 바다에서 파도를 스치는 바람과 설악산에서 내려와 노랗게 익어가는 벼를 흔드는 바람이 번갈아 분다. 울창한 소나무가 드리운 그늘 아래에서 시간이 멈춘 듯 나도 머문다. 청간정에 올라 있으면 한량이 될 수도 있고 신선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로지 쉼 일 뿐이다. ‘관동의 황홀한 경치를 보면 다른 사람으로 거듭난다’는 조선 양반 심재(沈梓)의 말이 헛되지 않은 것 같다.
청간정의 옆 군부대에는 만경대라는 곳이 있다. 높이 솟은 암석인 만경대는 고성의 숨어 있는 비경 중에 하나다. 이곳 또한 청간정과 함께 명승지로 이름난 곳이다. 청간정이 지어지지 않았을 때 청간역을 찾았던 관리나 사신들이 쉬어가는 곳이었을 거라고 짐작되기도 한다.
청간정 또한 지금의 군부대 안쪽에 있던 것인데 바닷물 범람의 위험으로 1928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지은 것이다. 청간정 아래 기념관에서 1920년에 촬영된 사진을 볼 수 있는데 현재의 주춧돌이 그대로 있은 것이 관찰된다. 바다와 대여섯 걸음 떨어져 있었다는 기록이 있고 또 그렇게 보인다. 평지에 자리해 있을때는 길을 가는 나그네가 쉽게 올라 쉬어갈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청간정은 작은 산봉우리에 있어 경치가 잘 보이는 이점이 있겠지만 낮은 곳에 있는 예전의 모습은 더욱 아늑하고 여유롭게 보인다. 나는 고성을 가로지르는 나그네가 되어 청간정에서 마음의 짐을 덜어내고 새사람이 되어 일어선다.
청간정 정선이 그린 청간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