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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차중 Nov 24. 2023

이유 없이 강릉

강원 강릉 등명락가사

아무런 이유 없이 강릉여행을 계획했다. 혼자서

이런 여행을 꿈꾸었다. 홀연히 떠나는 여행

강릉이라면 나 하나쯤은 품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넉넉 ...


열흘 전 바다가 보이는 숙소를 예약했다. 숙소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이 궁금했지만 체크인 시간은 오후 세시부터다. 그저 지나치는 여행 삼아 강릉을 심심치 않게 들렀었다. 사람들과 들썩이며 찾은 경포호는 그저 호수였고 경포해변은 그저 바다였다.


겨울밤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고 정동진에 일출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역에 내리니 바다였다.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독특했다. 바다에는 파도가 일렁였고 모래밭에는 사람들로 일렁였다. 연말연시 일출의 인기로 칼바람이 불었을지라도 해변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추위를 피할 곳이라곤 어묵과 커피를 파는 빨간 천막뿐이었다. 사람들은 영락없는 펭귄 떼처럼 서로의 몸을 기댄 채로 해가 떠오르는 방향만 지켜볼 뿐이다. 꽤 오랫동안 태양을 기다렸다. 다행스럽게도 해는 떠올랐고 추위가 허락한 만큼의 얇은 환호성이 일었다. 매서운 추위는 길었고 일출은 짧았다. 처음이자 마지막 정동진 일출의 추억이었다. 2002년 12월 27일이었다.


한 번은 봄날 새벽, 친구들과 주문진항으로 차를 몰고 갔다. 어선에서 방금 내린 열 마리의 오징어를 만 원에 샀다. 노란 두부깡을 끌고 다니는 할머니에게 오징어를 건네었다. 빨간 모자를 쓴 관리원들이 호루라기를 불며 허가 없이 오징어를 썰어주는 할머니들을 단속하느라 바쁘고, 할머니들은 끈에 달린 두부깡을 소리 내며 이곳저곳으로 피해 다닌다. 빨간 모자의 단속원들도 허가를 받고 단속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들이 할머니들을 단속할 이유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한 할머니를 찾아 오징어를 건네주었더니 좁은 구석에서 전광석화와 같은 빠르기로 회를 썰어 주셨다. 손질 비용은 삼천 원이다.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오징어회를 들고 슈퍼에 가서 초장과 경월소주 두 병을 사들고 나와 갯바위에 걸터앉아 오징어 회를 오들오들 먹기 시작했다. 세 명은 검은 비닐봉지를 반쯤 채운 오징어 회를 다 해치우지 못했다.


정동진 해맞이 열차노선은 사라졌고, 주문진항의 진풍경도 이제는 찾아볼 수 없다. 20년이 지나고 이유 없이 강릉을 다시 찾았다. 관광안내소에서 관광안내자료를 구했다. 강릉 여행이 시작되었다.

등명락가사에서 바라본 동해

등명락가사로 방향을 틀었다. 그 거리쯤이면 호텔의 체크인 시간에 맞추어 다녀올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었다. 산 중에 있지만 깊은 곳에 있지 않고 바다가 내려다보인다고 하니 첫 번째 목적지로 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등명락가사, 희귀한 무언가를 간직하고 있을 것 같은 이름이다.


주차장에 내리자 산등성 사이로 파란 동해가 펼쳐있다. 맞는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쏟아져 내리지 않을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바닷물이 가득 차 있다. 정확한 연도는 알 수 없지만 자장율사가 650년경 수다사(水多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절이다. 이 절은 현재 약사전 앞에 있는 오층석탑만 남긴 채 500여 년 동안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조선 시대 왕 한 분께서 원인 모를 눈병에 걸렸다. 전염병의 창궐을 우려한 조정은 점술가에게 까지 눈병의 원인을 물어본다. 그 점술가가 말하기를 등명사에서 쌀 씻은 물이 동해로 흘러내려 용왕님이 노하셨다고 전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왕은 등명사를 없애고 만다. 1956년 '경덕 선사'라는 분이 500여 년 전의 등명사를 재건하기 위해 이곳에 있던 10여 채의 민가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절을 재건한다. 등명락가사는 예전 이름 등명사에 관음보살이 머물렀다고 전하는 낙가산의 이름을 차용해서 붙여진 것이다.

등명락가사 일주문과 포대화상

'괘방산등명락가사'라고 써진 일주문 앞의 포대화상이 미소로 맞이한다. 포대화상은 긴 눈썹에 배가 불룩 튀어나왔다. 일정한 거처가 없고 항상 긴 막대기에 포대 하나를 걸치고 다니며 동냥을 다닌다. 가끔 어려운 중생을 돌봐주기도 한다는 그의 배를 만지면 복이 온다고 한다.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과 술병을 들고 포대를 두른 미소 짓는 모습의 조각이 일주문으로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웃게 해 준다. 포대화상은 등명락가사가 인정한 18 나한 중 한 분이시다. 16 나한에 달마대사와 포대화상을 포함하여 18 나한을 영산전에 모셨다. 나한이란 부처님과 동등한 신통력을 갖춘 부처님의 제자라는 뜻이다.


일주문을 통과하면 오른쪽에는 감로수라고 불리는 약수터가 있다. 오백 나한상을 조성한 후부터 물이 샘솟았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표지판에 적혀있는 효능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보리수나무 그늘 아래 있어 더욱 효염이 있어 보인다. 신기한 점은 물에서 과일향과 함께 단맛이 난다는 것이다. 어떻게 물에서 그런 맛이 나는지 모르겠다. 약수터 물받이와 그 주변에는 보리수 열매가 떨어져 있다. 다람쥐가 주워 먹는지 상한 것 없이 모두 싱싱하다. 몇 개를 주어 입에 물었다. 상큼함을 입에 한가득 물고 다람쥐처럼 사찰을 향해 오른다.


천정의 네모난 공간으로 이어진 계단을 오르면 대웅전을 비롯한 전각들이 있다. 기와의 빛깔은 초록과 옥빛을 섞어놓아 산과 바다의 색을 옮겨 놓은 것처럼 보인다. 범종각의 기와는 그윽한 노을빛이다. 영산전의 문살의 화사한 연꽃무늬가 사찰에 활기를 돋는다. 전각마다 문살의 무늬가 다르다.  다양한 색깔이지만 화려하지 않다. 야생화가 핀 들판을 보듯 수수하다.

영산전의 문살

약사전 앞의 오층석탑을 찾았다. 오층석탑은 기가 있었는데 한 기는 한국전쟁 중 포탄에 맞아 사라지고 다른 한 기는 절 앞의 바다에 수중탑으로 세웠다고 전한다. 비바람에 마모된 흔적이 예스러움을 더한다. 기단부에 덮게가 독특하다. 기단부의 빈 공간에 보물을 숨겨 놓았는데 훼손 없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어떤 귀중한 보물까? 문화재청에 물어보아도 답이 없다. 알면서도 알려주지 않는 것일까? 절에 직접 전화를 해보니 큰스님만 아신다고 한다. 큰스님을 뵈어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미타전과 오층석탑

돌아가는 길, 잊지 않고 다시 약수터를 찾아 감로수를 물병에 가득 담았다. 여전히 신기하도록 단맛이 났다.

등명락가사를 강릉에 올 때 가장 먼저 들를 관문으로 정했다. 예약한 숙소에서 보일 바다 전망이 궁금해졌다. 예약한 호텔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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