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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차중 May 03. 2024

붉음에 젖은 섬, 홍도

푸름으로 물든 섬은 청산도이고 붉음으로 물든 섬이라 하면 홍도다. '홍도야 울지 마라. 오빠가  있다'라는 노래 가사로 홍도를 많이 떠올리지만, 애석하게도 노랫말에 등장하는 홍도는 전남 신안군의 홍도가 아니다. 그렇다 하여도 나는 홍도로 향하는 여객선에서 그 노래를 몇 번이고 흥얼거렸다. 목포에서 흑산도를 거쳐 홍도로 향하는 여객선을 타고 50분 정도 바닷길을 달리자, 왼편에 모래언덕이 섬을 갈라놓은 듯한 섬 우이도가 보인다. 한 여행객의 말로는 저 섬이 보이면 날씨가 괜찮다는 것이라고 한다.


경유지인 흑산도에 도착했다. 내리는 사람은 몇몇에 지나지 않는다. 홍도-흑산도 여행의 경로는 단연 홍도부터다. 그렇다고 홍도가 흑산도보다 우위에 선 관광지라는 것은 아니다. 홍도를 첫 번째 목적지로 삼는 이유는 돌아오는 길을 생각하여 먼 곳인 홍도를 먼저 들르는 편이 수월하기 때문일 것이다.

홍도분교에서 본 홍도항 앞바다

20km의 해안선 길이와 600명 남짓의 인구가 흑산도에서 서쪽으로 22km 떨어진 홍도는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돌 하나, 풀 한 포기, 흙 한 줌도 섬 밖으로 가지고 나갈 수 없도록 법으로 지정되어 있다. 


항구의 오른쪽에 등대처럼 65m 높이의 노적봉이 모습을 드러낸다. 홍도에 다다른 것이다. 배에서 내리는 승객들의 걸음이 바빠 보인다. 아름다운 섬에 빨리 닿고자 걸음을 재촉한다. 항구가 있는 마을은 일백여 가구가 거주하는 1구 마을, 죽항마을이다. 홍도항은 바람과 파도가 많이 부는 지역인데, 파도 하나 없이 드넓은 호수 같은 모습이다. 이 지역 사람들도 변덕스러운 봄날인데 이런 날씨는 연중 며칠 되지 않은 날씨라고 하니 날씨 운은 따라붙은 것 같다. 오던 길의 하늘은 회색이었는데 홍도에 도착하니 파란 하늘빛이다. 


홍도에서 흑산도로 떠나는 마지막 배가 오후 세 시 반이기 때문에 둘러볼 시간은 다섯 시간 남짓이다. 점심도 해결해야 하고 두 시간가량 홍도 한 바퀴를 타는 유람선도 타야 한다. 또한 365m인 깃대봉에 오르려면 시간이 부족하다. 이곳에서 하루를 머물지 않는다면 홍도를 모두 둘러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홍도에 들어선 후에야 흑산도에 딸린 섬이라 생각하여 준비한 짧은 시간이 적절치 않음을 깨달았다. 

깃대봉 하늘에서 본 홍도 앞바다

홍도의 깃대봉이 있는 산은 멀리서 보면 매끈한 숲으로 덮인 산의 모습이 제주도의 커다란 오름처럼 보인다. 깃대봉 아래에 있는 전망대를 오르기 위해서는 마을을 통과해야 한다. 마을 길은 대부분 차가 다닐 수 없는 좁은 길이다. 수레를 묶어 짐을 나르는 오토바이가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걷기에도 버거운 50도 경사로의 골목길을 빠져나오면 마을과 산자락의 경계에 흑산초교 홍도분교장이 있다. 단층 건물에 놀이터 그리고 초록색 운동장은 텅 비었다. 다행히도 올해 여섯 명의 신입생이 입학해서 학교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전망대에 올랐다. 항구의 반대편 해변에는 유람선 선착장과 몽돌해변이 보인다. 항구 방파제 건너 바다로 줄지어 남문바위를 작은 섬들이 따른다. 둘레길을 따르다 그늘진 동백나무 아래서 쉼 없이 일렁이는 바다를 바라본다.


몽돌해변에 내려가 식당을 찾았다. 항구 주변과 달리 이곳은 인적이 드물다. 한마디로 아는 사람만 오는 곳, 두 곳의 식당만 문을 열었다. 길지 않은 점심시간이지만 재빠른 사장의 칼 솜씨에 한쟁반의 회를 맛볼 수 있었다. 

몽돌해변

섬 안에서 둘러보는 풍경도 아름답지만, 홍도의 진면목은 해안절벽에 있다. 해안절벽을 보기 위해서 유람선에 올랐다. 제1경 남문바위부터, 실금리굴, 석화 굴, 탑 섬, 만물상, 슬픈 여, 부부 탑, 독립문, 거북바위, 공작새 바위까지 10경을 모두 볼 수 있지만 1경에서 10경까지 순서대로 위치하지는 않는다.


도승 바위를 출발한 유람선은 남문바위를 돌아 여정을 시작한다. 남문 바위 배경으로 배를 멈추어 세우고 사진을 찍어주는 승무원의 친절한 서비스에 미소 만발한 승객들은 줄을 선다. 커다란 해식 동굴이 보인다. 홍도 제2경 실금리 굴이다. 이 동굴은 홍도에 유배해 온 선비가 가야금을 즐기며 머물렀다는 곳이다. 그 안에는 200명 정도 머물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다고 한다. 굴 안을 들여다보니, 마치 섬과 바다의 통문처럼 섬과 연결되어 있다. 배를 타지 않고서도 육로로 드나들 수 있는 곳이다. 동굴 앞은 바위 앞에 펼쳐진 비취색의 바다가 옥으로 된 마당처럼 펼쳐져 있다. 

홍도 제1경 남문바위
홍도 제2경 실금리굴

2구 마을로 불리는 석기미 마을에서 약속된 사람들을 내려주고 유람선은 다시 섬의 둘레를 돈다. 서해안의 남북을 지나는 뱃길의 등불이 돼주는 홍도 등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등대 앞으로는 제8경 독립문 바위가 섬을 지키고 있다. 홍도 등대는 일제강점기 일본 군함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그 바로 앞에 독립문 바위가 필연으로 서 있다. 명칭 때문일까? 홍도 주변의 작은 섬 중 가장 붉게 빛나는 바위로 보인다.

홍도 제8경 독립문바위

유람선이 다시 멈추어 섰다. 작은 보트가 유람선 쪽으로 다가온다. 회를 파는 일명 '횟배'라고 부르는 선박이다. 팔딱거리는 활어를 바로 잡아 회를 뜬다. 눈을 감고도 회를 썬다는 전설의 어부다. 손은 회를 써는데 눈은 이곳저곳을 살핀다. 소문대로다. 선상에서 즐기는 해산물의 맛은 단연 섬 여행에서 최고의 맛이 아닐 수 없다.

유람선으로 다가서는 횟배와 준비된 음식

배가 멈출 때는 배고픔에 눈앞에서 부모를 잃은 일곱 남매의 전설을 품고 있는 일곱 개의 바위 '슬픈 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유람선이 출발하자 비로소 제8경 슬픈 여가 눈에 들어온다. 

 

홍도 제6경 슬픈여


붉은 바위에 명상하듯 앉아 있는 작은 등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이 지키는 유인 등대였는데 홍도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면서 무인 등대로 바뀌었다. 천적이 없는 곳의 가파른 절벽에만 산다는 잿빛 괭이갈매기 한 마리가 그곳으로 날아간다. 홍도에 들어올 때 처음 나를 맞이했던 노적봉을 돌아 포구에 내렸다. 제각각 모양의 작은 섬들과 그리고 동물과 온갖 형체를 닮은 기암괴석들이 살아 숨 쉬는 것만 같은 붉은 섬, 다시 찾을 날 섬 안에 가득한 이야기를 들어야겠다. 홍도에서 붉은 노을을 맞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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