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감성기행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차중 May 12. 2024

짙은 바다 짙은 삶, 흑산도

섬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네 시였다. 짧았던 홍도 여행의 아쉬움을 흑산도에서 채우기 위해 이틀 밤을 보낼 계획이다. 재빨리 숙소에 짐을 놓고 예약한 숙소의 차를 타고 섬 여행에서 빼놓지 못할 여정인 석양을 맞으러 상라봉으로 향했다.

열두 번 휘어진 열두 굽이를 오르며 점점 넓게 보이는 바다의 전경에 섬들이 하나둘 들어온다. 마리재에 도착하자 '흑산도 아가씨' 노래가 흘러나온다. 육지를 그리워하다 검게 그을린 흑산도 아가씨의 애절한 노랫말이다. 들뜬 마음을 가라앉힌 채 잠시 이미자 선생님의 노래에 빠져든다.

상라봉에 서면 열두 굽이 길은 뱀의 형상으로 산을 오르는 모습이다. 신라와 고려 시대에 사용했던 산성이 있을 정도로 상라봉은 시야가 트인 곳이다. 또한 고려 시대에 송나라 사신선이 개경으로 가는 우리나라 항로의 시작점으로 이곳 봉화대에서 불빛을 밝혀 주었다.

점점이 자리한 섬들이 원을 그린다. 수평선에 맞닿은 도초도와 다물도와 홍도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먼바다에 운무가 끼어 있는 걸 보니 짙은 노을을 드리울 태세다. 다시 마리재로 내려와 노을을 지켜본다.

장도가 이름처럼 길게 늘어서 있다. 장도의 한 봉우리에서 습지가 발견되었다. 마을 뒤편 약 230m 완만한 구릉지에 생성된 이 습지는 람사르습지에 등록되어 세계의 유산이 되었다. 장도습지는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아 섬마을 사람들에게 식수로 이용되고 있다. 장도 습지에 물이 마르지 않는 이유는 장도의 위치가 난류의 길목에 위치하여 해무가 자주 끼기 때문이라고 한다. 장도에 하루 머물며 마을 이야기도 듣고 습지에 올라서 봐야겠다.

장도 너머 장도보다 더 길게 수평선에 앉은 홍도를 스치며 해가 가라앉는다. 노을 바라보며 서 있는 사람들이 석양의 풍경이 된다. 바다는 유리가 되어 주황빛을 강렬하게 반사한다. 홍도는 노을에 더욱 붉어진다.

흑산도는 천주교와 인연이 깊다. 그 인연은 황사영 백서 사건으로 이 배를 온 정약전으로부터 시작된다. 천주교 때문에 유배를 당했지만 그는 천주교를 떨칠 수 없었다. 박인수의 집에 귀양살이했었는데 집주인마저 교화를 시켜 교인으로 만들기도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내가 묵고 있는 호텔은 흑산도에서 유일한 호텔이다. 이 호텔은 흑산성당에서 허름한 호텔을 보수하여 일반인을 위한 숙박시설과 피정의 집으로 운영된다. 피정의 집이란 가톨릭 신자들이 일상에서 벗어나 수련하며 머무는 곳이다. 호텔에서 성당으로 가는 길에는 단독형 피정의 집 여러 채가 더 있다.

흑산성당은 서해 최남단까지 천주교가 전파되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천주교는 종교의 기능뿐 아니라 교육과 의료 지역개발과 문물 도입의 역할도 해왔다. 특히 이 섬에서는 성모중학교를 설립하였고 선박을 건조하는 일까지 도맡았다. 성당 앞에 지은 성모중학교는 외관의 변형 없이 지금은 흑산성당 역사관으로 쓰이고 있다. 성모중학교는 폐교되었지만 바로 설립된 흑산중학교가 세워지면서 흑산도의 학교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흑산성당 앞에 섰다. 성당 언덕 아래는 천주교 신자로 보이는 사람이 나룻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오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처음 이 섬에 교리가 전파되는 모습을 그린 것 같다. 장도에서 가져온 화강암과 해안가의 몽돌을 가져다 지었다. 섬이라는 여건상 중장비를 쓰지 못하고 오로지 주민과 사제의 힘으로 건축된 점과 지역사회에 여러모로 기여한 점을 높이 평가해서 국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어선이 드나드는 예리 선착장에 나갔다. 마치 흑산도 선박을 알리는 깃발처럼 어선마다 홍어가 서너 마리씩 매달려 건조되고 있다. 구 선착장 상가의 간판들은 모두 빛이 바랬다. 고래수산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근처의 고래공원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고래와 인연이 있는 것 같다. 점점 고래의 흔적이 보인다. 벽면에는 과거의 예리항의 풍경이 사진으로 걸려 있다. 수백 척이 정박 흑산항의 사진이 있고 그 옆으로 10m가 훨씬 넘는 고래를 해체하는 사진도 있다. 아이와 부녀자들이 고래 곁으로 몰려나와 구경하는 모습도 있다. 흑산도 고래를 상상하지도 못했는데 이 일대는 대왕고래, 참고래, 혹등고래 등 고래가 다니는 길목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포경근거지가 설치되어 고래를 잡아 예리항에서 해체한 후 일본으로 반출했다고 한다. 1980년대에도 거대한 고래가 잡힌 사진도 걸려있다. 1986년 고래잡이가 금지될 때까지 고래는 홍어와 함께 흑산도의 중심 어종이었다.

문어잡이 통발을 손질하는 어부 아래로 여러 무리의 숭어 떼가 마을을 이룬다. 예리 포구 끝에 육지를 바라보며 흑산도 아가씨가 조형물로 제작되어 있다. 살며시 아가씨 옆에 다가섰다. 예전에는 평생 육지를 한 번도 밟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은 섬들을 오가며 힘겨운 삶을 이어갔을 섬사람들의 갈망을 담아 흑산도 아가씨는 바다를 내다본다.

https://youtu.be/G27ptjSXCTM?si=D1Vzr58ZzRg3YVwm

https://millie.page.link/g3REu


매거진의 이전글 붉음에 젖은 섬, 홍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