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사람들에게 원산도에 간다고 했더니 ‘원산폭격’의 원산이 생각났는지 “북한 아니야?”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고 “거기 어디야? 배 타고 멀리 가는 곳 같은데?”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비로소 여행의 기쁨을 알게 된 대학 시절에 지도를 찾다가 원산도라는 섬을 알게 되었다. 대천항에서 서쪽으로 5Km, 안면도에서 남쪽으로 2Km에 있는 가까운 섬이지만 섬 여행을 결심하기는 쉽지 않았다. 군 생활 시절 후임의 고향이 원산도였고 그 이후에는 섬의 이름을 잊은 채 지냈다. 후임의 이름은 아예 잊어버린 상태다. 이름이라도 기억하면 수소문해서 찾아볼 텐데...
올해의 첫 여행지로 안면도를 찾을 생각이었지만 지도로 안면도 주변을 찾아보다 작은 섬 원산도가 보였다. 그곳에서 고요한 겨울 바다를 지켜보고 싶었다. 안면도는 1970년부터 다리가 연결되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지척의 원산도는 사람들에게 각인되지 못하는 섬이었다. 2019년 안면도에서 원산도를 잇는 원산안면대교가 건설되었고 2021년 12월 대천에서 원산도로 이어지는 보령해저터널이 건설되면서 원산도는 마침내 남북으로 도로가 연결되어 차츰 찾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수많은 사람의 추억이 깃든 대천을 길옆으로 제쳐두고 원산도행 해저터널로 진입했다. 수심 80m 표지판이 보이자 기압 차로 귀가 먹먹해진다. 배를 타고 40분을 갈 거리를 차를 타고 5분 만에 7Km의 터널을 빠져나왔다.
원산도의 어느 한적한 바닷가에 닿았다. 포구의 이름을 알아보던 중 간신히 마을 입구 버스정류장에 적혀 있는 마을 이름을 찾았다. 점촌이라고 적혀 있으니 점촌 마을일 것이다. 하루에 세 번 온다는 버스 시간표가 걸려 있고 가끔 자동차가 지날 뿐 집밖으로 나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선 세 척이 포구에 정박해 있고 길가에 집을 내놓은 검은색 강아지가 심심한 참에 나를 보았는지 줄에 묶인 채 허겁지겁 날뛰며 꼬리를 흔들어 댄다.
포구 옆 바다로 난 오솔길을 따라가다 길의 끝을 만났다. 아주 작은 조각배만이 드나들 수 있을 곳이다. 커다란 배가 일으킨 멀리서 온 파문은 어느새 텅 빈 나루터 부딪혀 작은 파도를 만든다. 길가에 떨어진 누런 솔잎이 눈 녹은 자리에 드러났다. 바다로 난 점촌의 작은 오솔길에서 잔잔한 겨울 풍경을 담아간다.
마을을 빠져나가는 길, 주인이 떠난 원산도리 798번지 무너진 집 벽에는 누군가 그린 커다란 해바라기가 활짝 폈다. 집 옆으로 2016년 폐교된 원의중학교 터가 있다. 건물은 사라지고 두 줄로 늘어선 향나무가 등교길을 추억하듯 계단을 감쌌다. 주변의 효자도, 장고도, 고대도의 학생들도 원의 중학교를 다녔다는데 1980년대는 학생 수 가 200명에 달했다고 한다.
원의중학교는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 칼 귀츨라프(Karl Gutzlaff)를 기리는 귀츨라프 연구회에 의해서 1961년 설립된 학교이다. 독일인 귀츨라프는 영국 런던 선교회의 일원으로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중 1832년 7월 원산도 동쪽 섬 고대도에 도착하였다. 그는 한국에 성경책 두 권을 이 지역에 남김으로써 한국 최초로 복음을 전파하였다. 한자로 적힌 주기도문의 한글 번역과 씨감자와 포도의 재배법, 포도즙의 제조법을 전수한 것은 모두 한국 최초의 일이다. 이 일은 그가 입국한 1832년 7월 25일부터 8월 12일까지 한국에 머문 19일 동안 행해진 일이다. 그는 중국의 국가정보를 염탐을 목적으로 온 영국 동인도회사의 일행 중의 한 명이었지만 한글의 우수성을 알린 논문을 중국에서 발표하였고 조선이라는 나라와 한글을 유럽에 알렸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 선교활동을 한 그는 마지막으로 홍콩에서 활동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홍콩에는 그의 이름을 붙인 귀츨라프 거리가 있다고 한다.
선촌항으로 가는 길, 진고지 포구에는 썰물의 갯벌은 가느다란 갯골을 남겼고 커다란 닻들이 모여 출항을 기다린다. 선촌항에 도착했다. 제방에서 20m쯤 되는 곳에 작은 섬이 하나 있다. 사각의 틈새는 동굴의 입구처럼 보인다. 물에 잠겨 가볼 수는 없다. 생수를 사러 가게에 들러 섬의 이름을 물었다. 이곳 사람들은 그 섬을 똥섬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유를 묻자 전부터 마을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이름이 붙여진 이유를 섬의 모양으로 짐작할 수 있었기에 섬 이름을 알기 위한 탐문은 거기서 중단했다. 썰물이 되면 섬까지 걸어갈 수 있다고 한다. 다시 원산도를 찾을 때 이 섬에 다가서면 내가 부를 이름 하나 붙여줘야겠다.
항구의 등대로 가는 길에는 어부들의 그물 손질이 한창이다. 제방길을 곧장 걸어가 등대 앞에 섰다. 불과 300m 거리에 효자도가 보인다. 효자도는 대천항에서 선촌항을 경유하는 여객선을 이용해야 들어갈 수 있다. 130명의 주민이 산다는 효자도에 대한 궁금증이 물결처럼 밀려온다. 다시 이곳을 찾을 이유를 만들고 간다.
원산도는 천수만과 마주하고 있어 물결이 잔잔하다. 바다에는 해조류가 갯벌에는 바지락과 낙지가 풍부한 곳이다. 이곳의 주민들은 봄에는 실치와 까나리, 가을에는 멸치를 잡고 겨울에는 김 양식을 하며 생활한다. 풍부한 수산물은 이 작은 섬에 각기 다른 풍경을 지닌 세 곳의 항구가 있는 이유이다. 원산도의 지형은 뫼산(山) 자 형상을 하고 있다. 山의 끄트머리 세 곳에 초전항, 선촌항, 저두항 순으로 위치한다. 아래 획(_) 부분에는 오봉산 해변, 사창 해변, 원산도 해변, 저두 해변 순으로 네 곳의 해수욕장이 굵은 선으로 늘어서 있다.
서쪽의 초전항으로 드는 길은 고요한 섬마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섬 주변의 바다는 파도가 일지 않는다. 바다 가까이 다가서자 오리 떼가 날아오른다. 초전항의 등대는 전봇대처럼 생긴 쇠기둥의 등대는 포구의 이정표다. 배에서 해산물을 거두어들이는 어부의 바쁜 몸짓이 초전항의 풍경을 그려낸다. 한때는 쓰레기로 가득 찬 섬이었던 시루섬이 오른쪽으로 보이고, 바다를 지키는 군관처럼 보여서 이름 붙여진 군관도가 왼쪽을 지킨다.
포구의 끝에는 ‘초전부녀회 맛집’이라 적힌 산자락을 둘러맨 식당이 있다. 유일한 바닷가 테이블은 일몰이 비추면 차지하고 앉아야 할 명당이다. 국수와 해물파전을 주문하였다. 간재미 무침 한 접시를 내어 주신다. 믹스커피를 가져와 유일한 탁자에 앉았다. 호수와 같은 잔잔한 바다와 제멋대로 서 있는 작은 섬들과 함께 차를 마시는 기분이다. 항구로 들어올 때 나를 보고 놀라 날아갔던 오리 떼가 되돌아온다. 원산도에 서서히 정이 들어간다.
점촌마을의 바다로 난 오솔길 점촌포구 폐허와 해바라기, 원의중학교 옆 칼 귀츨라프 기념비 선촌항 제방 앞 똥섬이라 불리는 섬 어느 카페에 그려진 원산도 초전포구로 드는 고깃배 초전항 등대와 시루섬 초전부녀회 맛집 앞 바닷가 테이블과 군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