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최북단 강원도 고성은 화진포와 송지호 같은 바다와 인접한 호수가 있다. 또한 직선거리로 50km가량 길게 뻗어 있는 해안선은 넓고 깊은 동해바다를 감상할 수 있는 우리나라 최고의 장소로 모자람이 없다. 조선 시대부터 고성 바다의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 지은 누각을 찾아 여행하는 것도 고성 여행의 매력 중의 한 가지다. 부산에서 출발한 7번 국도는 고성의 해안길을 지나 통일전망대 앞에서 멈추어선다. 7번 국도와 해안도로를 넘나들며 토성부터 시작되는 해안선을 따라 고성여행을 시작한다.
관동팔경 중 제1경으로 불리는 것은 청간정에 올라서 보는 수려한 풍경을 한마디로 표현해 주는 말이다. 나는 고성을 여행할 때 청간정을 관문으로 여긴다. 청간정 입구에 들어섰다. 청간정 전시관에는 정선을 비롯한 선인의 그림을 볼 수 있고 청간정의 역사를 읽을 수 있는 곳이다. 청간정의 옛 모습을 그림과 가깝게는 사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청간정은 개수와 보수를 거쳤을 뿐 아니라 바닷가에 있던 것을 옮겨 지은 것이기 때문이다. 화폭에 그려진 바닷가에 지어진 청간정의 모습은 절벽 위에 있는 지금의 모습과 또 다른 정취를 느끼게 해 준다. 현재 걸린 현판은 이승만 박사의 필체다. 누각에 오르면 드넓은 백사장과 파란 바다의 대비 점점이 박힌 작은 섬들의 풍경과 고요히 흐르는 설악산에서 내려와 바다로 흘러드는 청간천의 풍경을 모두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청간정에 걸친 풍경
청간정을 빠져나와 군부대 뒤의 청간리해변으로 들어왔다. 얼마 전까지 군사보호구역이었는데 철책은 사라지고 청간정에서 이어지는 산책로를 조성하는 공사를 하고 있다. 조만간 청간정에서 청간리 해변까지 걸어서 올 수 있을 것이다. 청간리 해변은 1월 찬바람이 불면 청간리 앞바다에 펼쳐진 바위군락 위로 하얀 서리가 덮인 겨울 바다의 진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건조를 위해 가지런히 걸어놓은 생선들의 모습도 고성의 멋진 풍경이 되어 준다.
파도가 잠든 청간해변
해안도로를 따라 아야진에 도착했다. 구암리로 불리던 아야진(我也津)은 산의 형상이 '也'자를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야릇한 마을 이름을 가진 이곳은 해변 앞 백사장 앞으로 펼쳐진 넓은 바위 지형이 특징이다. 넓은 암반은 마치 굳어진 물결의 모습이다. 바위 길을 걷다 보면 홍합과 조개, 미역 등 바다생물을 직접 만져볼 수 있다. 아야진항을 둘러싼 아야진방파제 끝에는 빨간 기둥의 등대가 있는데 둑의 길이가 540m에 이른다. 둑길을 걸으며 바닷바람을 느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겨울 새벽 해무와 일출을 이곳에서 본 적이 있다.
파도가 굳은 것처럼 보 이는 바위 광장
천학정은 청간정처럼 웅장하지는 않지만 아늑함으로 비교하자면 청간정이 부럽지 않은 곳이다. 1931년에 건립된 정자인데 제법 고풍스럽다. 교암항의 두 개의 등대 풍경이 이곳의 매력이다. 100년 된 소나무로 둘러싸인 아담한 공간에 한참을 머물다 간다. 천학정 앞에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 있는데 군 초소가 있던 자리로 보인다. 평평한 시멘트 바닥이어서 자리를 펴고 앉아있다가 갈 수 있는 곳이다. 천학정 절벽 아래로 모자 쓴 불상, 기도하는 손, 고래와 코끼리 얼굴 형상의 바위들에는 이야기가 서려있다.
천학정 너머로 바라본 교암항 등대
삼포해변 곁에 자작도해변에 이르기전 작은 해변이 있다. 경계가 모호하여 삼포해변의 끝쯤으로 보인다. 이곳에는 산책 중에 발견한 성혈이 있다. 세숫대야 크기의 성혈인데 이곳 근처에 있는 선사시대 유적인 문암리유적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성혈이란 암벽이나 바위에 동그랗게 파 놓은 홈이다. 선사시대부터 이 문양을 파는 풍습이 있었는데 속초 죽서루 용문바위 위에는 찻그릇 크기로 열 개가 넘고 영암 월출산 구정봉에는 직경이 150Cm가 되는 것도 있다. 삼포 해변의 성혈은 세숫대야 크기로 10여 개가 파 있다. 이 풍습은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풍습이다. 삼포 해변의 성혈이 생성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성혈이 있다는 것은 기운이 돋는 곳이며 경치 또한 빼어난 곳임을 말해준다.
해안도로를 따라 솔 숲으로 이름난 삼포 해변길을 지나 봉수대 해변 방향으로 걸었다. 해변 뒤로 해발 53m의 산 위에 봉수단이 있어 이름이 봉수대 해변이다. 1996년 4월 고성군 삼포리 일대에 인근 육군 포탄사격장에서의 발화로 큰 산불이 난다. 이 화재로 마을 전체 50 가구 중 38 가구가 불에 전소되고 140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였다. 이때 피해를 본 주민의 생계를 위하여 군사 통제구역이었던 곳을 1997년 봉수대 해수욕장이라는 이름으로 개장하게 된다. 봉수단은 높은 고도는 아니지만 조망이 뛰어나 동해안 일대는 물론 멀리 금강산까지 보인다고 한다. 봉수단의 북쪽으로 대응하는 봉수는 12Km나 떨어진 반암항 근처의 정양산 봉수다.
봉수대해변 끝의 오호항 너머 서낭바위를 찾았다. 이곳은 내가 우리나라 해안을 돌아본 곳 중 가장 희귀한 석물들이 있는 곳이다. 알려진 바로는 이곳에 신령스러운 기가 가득하다고 한다. 서낭바위와 부채바위 그리고 돌고래와 상어 무리가 몰려드는 형상의 ‘토어’라는 바위들이 해안 절벽 아래를 가득 메우고 있다. 물결이 돌이 된 것처럼 보이는 바위도 있다. 서낭바위는 오호리 마을의 서낭당이 있었던 곳이다. 서낭바위를 향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형상의 부채바위가 있고 무속인이 재를 치른 흔적이 있는 구멍이 파인 커다란 바위도 있다. 두 바위 위에는 작은 소나무가 한 그루씩 자라고 있다. 서낭바위 일대는 2010년에 군사 시설에서 개방되었다. 아직도 서낭바위가 있는 절벽해안 입구에는 부서진 철책과 출입 기둥의 잔재가 남아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낚시객이 붐비고 쓰레기가 차오른다. 사람들이 바위를 손으로 문질러 규암 성질의 바위가 훼손된 흔적도 있다. 나는 이곳이 아름답게 보존되면 좋겠는데 말이다. 올해 이곳 일대를 정비하여 다시 개방한다고 하니 철책의 흔적은 없어질 것 같다. 아울러 낚시객 또한 다른 곳으로 인도하면 좋겠다.
서낭바위와 부채바위
송지호해변을 걷는다. 먼 곳 한 쌍의 등대가 불을 차례로 껐다 켰다 한다. 어둑해진 모래사장에서 남녀가 서핑보드를 옆구리에 차고 나온다. 한여름이 지난 접경지역의 어둠 속 해안가는 술집과 카페의 등불만이 고요하게 새어 나온다. 고성의 해변은 걷기만 해도 넉넉해지는 곳이다. 오늘의 여정을 마무리하고 삼포민박마을로 든다. 파도소리가 들려오고 상업시설이 없어 고요하다. 고성 해안선의 중간 지점이기도 한 곳이 바로 삼포민박마을이다. 파도소리만 들리는 밤, 그곳에서 잠이 들었다.
소나무 산소길이 있는 자연석호 송지호 산책으로 하루일정을 시작한다. 울창한 소나무 숲이다. 나무 사이로 호수의 물결이 빛을 반사한다. 검은 오리와 하얀 새가 각각 무리를 짓고 물속으로 들어가면 반드시 물고기를 물고 나온다. 목을 털어내며 물고기를 삼킨다. 모두 맨눈으로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마주 보이는 호반에는 송호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1959년에 마을 출신 독지가에 의해 건립되었는데 이곳 역시 1996년 고성 산불을 피해 가지 못했다. 1997년 다시 지어졌다고 한다. 겨울철에는 화진포와 더불어 고니가 먹이활동을 하러 찾는 곳이다.
송지호의 윤슬
국도와 해안도로를 넘나들며 왼쪽에는 금강산 줄기를 오른쪽에는 바다를 둘러보며 달린다. 거진항에 도착했다. 산등성이를 바라보면 우두커니 서있는 하얀 등대가 보인다. 거진 등대이다. 등대로
이르는 길은 약간의 산행을 필요로 한다. 계단을 따라 오르다 보면 자태를 뽐내는 소나무를 많이 만날 수 있다. 등대를 포함한 시설은 마치 작은 학교처럼 규모가 있었다. 보안시설인 이유로 등대를 먼발치에서만 볼 수 있다. 등대 아래의 50미터 즈음의 긴 담벼락에는 마라도, 울릉도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지역의 등대의 모습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이 산책로가 화진포에 있는 김일성 별장까지 4Km의 산등성으로 이어져 있다. 햇살 좋은 봄날 산꽃이 필 때 다시 들러 꼭 걸어봐야겠다. 등대가 바라보는 저 아래에 고깃배 한 척이 긴 물살을 가르며 거진항에 든다. 등대 아래의 산자락에 마을이 있다. 내려가는 길은 마을길로 택했다. 바다가 잘 보이는 곳을 찾아 집들이 촘촘히 모였다. 50여 채 되는 이 마을은 길이 따로 나있지 않다. 집의 뒤뜰과 앞마당이 서로의 길로 연결되어 아래 큰길까지 내려간다. 방 문만 열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정겹게 인사할 수 있을 것 같다.
거진등대
바다 위를 걸을 수 있는 곳 백섬으로 향했다. 이곳은 2020년 인공데크가 놓여 파도치는 바다 위를 걸을 수 있는 곳이다. 백섬은 잔돌이 많아 ‘잔철’로 불리었는데 갈매기 배설물로 하얗게 보인다고 해서 백섬 불린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이 지역에서는 일본이 패전소식을 먼저 듣고 주민들을 몰살시키고 탈출구를 찾아 탈출하려 하였다. 이를 알아차린 주민들이 바다를 건너 백섬을 비롯한 작은 바위섬들로 피해서 위기를 모면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해안도로 공사로 인해 이곳의 많은 바위섬들이 사라졌다고 한다. 아마도 섬 돌을 건설자재로 사용한 듯하다.
백섬해상전망대
고성에서 나에게 가장 사랑스러운 곳 화진포로 간다. 화진포는 동해안 최대의 자연 석호이다. 석호(潟湖, lagoon)는 바다가 산호나 모래 같은 퇴적물로 분리된 호수를 말한다. 수심이 얕아 새들의 먹이활동이 활발한 지역이다. 겨울이면 해 질 녘 이곳에서 백조가 군무를 추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호수를 가로지를 수 있는 길이 있다. 자동차로도 통행이 가능하다. 올해도 갈대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해안도로를 경계로 화진포 해수욕장이 보인다. 금구교 다리 밑으로 흐르는 작은 수로가 유일한 호수와 바다를 연결해 주는 물길이다. 백사장을 가로질러 해변으로 흘러드는 바닷물에 손을 적신다. 잔잔한 물결이 손을 잡는다. 겹겹이 거세게 밀려오던 파도가 발 앞에서 모래 속으로 사그라진다. 먼발치 해변의 파수꾼처럼 서있는 등대가 파도소리와 바람소리에 달콤한 낮잠에 들었다. 나는 화진포와 연결된 응봉으로 간다. 122m 높이의 응봉 정상에서는 화진포 전경을 볼 수 있다. 멀리 금강산의 비로봉이 보이고 남북의 경계인 송도가 수평선의 끝에 걸쳐있다. 응봉 표지석을 한 바퀴 돌며 고성의 바람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