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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한마 Jun 24. 2023

나도 편안히 죽을래

질병이 아닌 인간을 치료하는 의료, 호스피스



"나도 나중에 편안히 죽을래"


뜬금없이 나는 소리에 깜짝 놀라 거실을 들여다보니 어머니께서 티비를 보고 계셨다. 티비에는 호스피스 병동에 관한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다. 앞뒤 맥락을 모르고 들려온 소리에 깜짝 놀랐었지만 이윽고 상황이 이해가 됐다. 죽음은 모든 이에게 한 번씩 공평하게 다가온다. 말은 안 해도 어머니도 언젠간 다가올 죽음에 대한 걱정이 마음 한구석에 있으셨나 보다. "2045년도에는 특이점이 오니까 영생도 머지않았어요."라고 내가 아무리 말한들 귀에도 들어오지도 않으실 것이다. 물론 반쯤 헛소리긴 하지만.






출처 : 조선일보


호스피스의 개념은 중세유럽에서 비롯됐지만, 현대적인 시스템으로 구축된 것은 20세기의 영국이었다. 인간이 태어나 살면서 많은 생명들이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을 고려했을 때, 호스피스의 개념이 너무 늦게 발전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호스피스의 발전이 늦은 이유는 몇 가지를 들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요인은 의료기술의 발전이었다. 19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수술은 고통스러웠으며, 병원은 비위생적이었고, 진단 기술도 제한적이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는 환자의 치료가 최우선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부터 폭발적으로 의료기술이 발전하였는데 정복하지 못한 질병을 마주하는 인간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며 본격적인 호스피스의 발전도 이루어졌다.





또 다른 이유로는 본격적으로 이야기할 인간의 본능인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인간이라 함은 존재의 한 부분으로서 죽음을 마주할 필연성을 가지고 있다. 누구나 죽음이 온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죽음을 두려워하며 피하고자 하는 본능적인 욕구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간단히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죽음은 생물학적 생존본능에 위배된다. 모든 생물은 생존을 위해 노력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생존은 자신의 유전정보를 후대에 남길 수 있는 기회를 갖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죽음은 생존의 종말을 의미한다.

두 번째, 죽음은 불확실하다. 죽음은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아무도 알 수없고, 죽음에 대한 경험도 없으며, 사후에 어떻게 되는지도 아무도 모른다. 이러한 불확실성과 죽음에 관한 무지는 인간에게 불안과 공포를 유발한다.

세 번째, 인간은 삶을 사랑한다. 인간은 미래를 계획하고 상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죽음을 피하고자 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욕구와 희망을 가지는 결과일 수 있다. 또한 죽음은 살아오면서 이루어놓은 가족, 친구, 연인 등의 인연들과 끊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죽음을 피하고자 한다.


이밖에도 수많은 이유들로 인간은 기본적으로 죽음을 두려워한다. 이로 인해 죽음과 관련된 주제에 대한 대화와 이해가 제한되었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은 문학작품에서 상징적으로 의미되어 왔다. 죽음은 슬픔과 고통을 다루는 주제뿐만 아니라 죄악과 권력, 사랑과 절망등을 표현되기도 했다. 이렇듯 죽음은 두려움을 넘어 상징성을 갖기도 하고 때로는 신성시되기까지 했는데, 이는 인간이 죽음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다시 호스피스로 넘어가서 죽음에 관한 인식과 호스피스의 관계는 이런 상징성을 갖고 있다. 죽음은 지금껏 피할 수 없는 것, 두려운 것으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에 다가오는 죽음을 피할 수 있는 방법만 연구해 왔다. 죽음을 피하고 최대한 늦추는 방법은 질병을 치료하고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이었다. 인류는 그 결과로 진보된 의료과학 기술을 얻고 수많은 질병을 치료할 수 있게 됐으며, 수명을 늘리고 죽음을 지연시킬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질병의 치료에 집중한 나머지 죽음을 앞둔 환자가 느낄 좌절감과 상실감, 무력함등의 삶의 회의에 대해서는 생각할 수 없었다. 환자들은 죽기 직전 고통스러웠던 모습만을 주변인들에게 남기고 떠났다.





그러던 1967년 세계 최초의 근대적 의미의 호스피스가 영국의 시슬리 손더스에 의해 개념이 확립됐다. 근대 호스피스의 확립은 그 의미가 크다. 지금까지의 의료가 '질병의 치료'에 온 힘을 쏟고 있었다면 호스피스는 '사람의 치료'를 중점으로 삼았다. 이전에는 죽음이 두렵고 피해야 할 존재로 여겨졌지만 호스피스의 영향으로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더 개방적이고 솔직한 대화를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게 됐다.

이로써 죽음의 존엄성이 강조되었으며, 질병치료가 아닌 환자의 케어를 더 중요시됐다. 이전에는 환자가 죽음에 이르는 동안 자기 결정권을 상실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호스피스는 환자들이 존중받는 환경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줬다. 이렇게 호스피스는 질병과 사람에 대한 인식을 크게 바꿨다. 비로소 신성시되고 두려웠던 죽음이라는 존재를 인간 스스로 당당히 마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출처 - 내 책



위는 만화 '의룡'의 한 장면이다. 오랜만에 책장에서 꺼내 보던 중 이번 글과 같은 주제의 에피소드가 나와 소개해본다. 인간은 태어나고, 성장하며, 끝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피할 수 없는 현실이고 여전히 두려운 존재지만, 어떻게 그 순간을 마주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죽음의 존엄성과 삶의 연장 사이에서 현대 사회는 여전히 많은 논쟁과 도전을 겪고 있다. 죽음과 삶의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호스피스가 최선의 선택을 제시하는 담론이 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시슬리 손서스의 말을 인용하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으며, 소중한 이가 죽어가는 모습은 계속 살아가야 하는 남은 자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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