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당신에게 매료되었다.
그때 나에게 있어서 당신의 소설은 어둠 속 한 줄기의 빛이었고, 꿈이었다. 내가 당신을 구원자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었을 테다.
⸻열다섯 해 즈음 무렵, 당신의 소설을 읽게 되었다. 그 후로도 계속해서 당신의 소설을 애독해 왔다. 그건 지금도 여전하다.
독서가 취미는 아니였지만, 싫어하진 않았다. 오히려 좋아하는 것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 어느 작품도 내게 큰 영감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당신의 작품은 달랐다. 오직 당신만 할 수 있는 특유의 서술, 묘사. 독특한 표현과 단어를 선택하는 데에 있어서의 예리함. 조사 하나하나에도 공을 들여 써내려간 듯한 섬세함. 글을 쓸 때만큼은 자유로워 보였던 당신의 모습이 소설 속 문장에서 느껴질 정도였다. 이 책에는 당신의 영혼이 담겨 있다. 비록 당신의 육신은 짓무르고 녹아내려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의 고형이 돼 버렸지만,
당신은 분명 아직 여기에 있다. 그건 지금도 이, 내 앙상한 손에 들린 녹색의 책 한 권에도 남아 있다. 옆에 아무렇게나 헤집어놓은 불에 타다 만 원고지 몇 장과 함께 당신의 영혼이 어려 있다. 아니, 당신의 한이 서려 있다. 양손의 붕대가 숯검댕이로 더러워졌다. 아아, 방금 전만 하더라도 이 손에는 이런 더러운 붕대가 아닌, 깨끗한 하얀색의 실크 장갑이 있었던 것 같은데. 영원히 깨어나기 싫은 꿈에서 버티다가 어느 순간 현실로 돌아오면 이 손에는 당신의 찢겨 나가버린 육신의 잔해가 남아 있다.
아아, 어디서부터 무엇이 어떻게 잘못 된 걸까. 내가 당신의 소설을 발견한 것부터가 실수였을까. 아니면 내가 당신을 직접 만나겠다고 결심이 선 순간부터였을까. 내가 당신에게 찾아간 것부터가, 애초에 당신의 옆에 있고 싶었던 것부터가 잘못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까지도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어디에 가고 싶었는지, 어떻게 하고 싶었는지,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모른 채 설렁설렁거리며 대충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당신이 여기에 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건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당신의 옆에서 문학을 배울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아니, 당신의 옆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나는 쭈욱 당신만 바라봐 왔다.
「기도」
⸻한번 피우기 시작하면 그 운명이 다할 때까지 절대 꺼질 리 없는 백린의 불꽃이 나를 감싼다.
나는 두손을 힘껏 깍지를 끼고 기도했다. 다른 세계, 다른 미래의 나는 불행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내세가 있다면 부디 그러길 바란다. 너로 피어오르는 업화 속에서 현세의 내가 쌓은 업보와 후회, 그 모든 것을 안고 지금 당장 속죄하러 갈 테니.
아아, 친구여. 미안하다. 결국에는 너와 제대로 마주보지도 못하고 가다니. 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꼭 화해하리라고, 그러자고 약속했었는데. 안 되지 않은가.
작열감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나는 나의 오랜 친구이자 영원하고 유일무이한 그대에 대한 자책과 죄책으로 괴로워했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그대를 잘 알고 있었고, 진심으로 사랑했다. 업화 속에서 죽어가는 순간에 내 눈앞에 있는 수많은 세계를 보며 중얼거린다.
조금 더 이 세계를 사랑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