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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월 Aug 27. 2024

핑크 레모네이드 선데이

2024년 8월 25일 일요일 기록

오늘은 유난히 무더운 날이다. 갈증조차 나지 않는 이런 더운 날은 마치 6년 전 여름 날을 떠올리게 만든다. 6년 전 여름날도 유난히 더워서 잠 못 이루는 밤이 있었다. 안 그래도 오늘은 다음 주 기숙사 입실을 준비하느라 여기 저기 왔다 갔다 해서 무더위에 취약했는데, 또 다시 무더위에 방심한 사이 직격타를 맞았다. 폭염 주의보의 경께가 풀리지 않는 나날 속에서 여름 속 괴로움은 더욱 깊어만 간다. 이번 여름은 왜 이렇게 더운지 여름을 좋아했던 독특한 나에게도 여름이 싫어지게 만든다. 사실, 여름을 좋아했던 이유는 그 계절 특유의 감성이 좋아서 그랬던 것이지 더운 걸 좋아하는 게 아니다. 오늘은 정통시장에서 핑크 레모네이드를 사서 마셨다. 핑크 레모네이드를 일요일에 마신다, 어쩐지 울적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아마, 샘 스미스의 "To Die For"이라는 곡의 가사가 내게 인상 깊게 들려서 그럴지도 모른다. 동시에 하야시 후미코의 <나폴리의 일요일>이라는 수필이 생각이 난다. 그 수필 속에서도 일요일은 주말답게 여유로운 이탈리아 나폴리의 풍경을 잘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어딘가 쓸쓸한 느낌이 물씬 든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요일은 아쉬움이 유난히 퍽 드는 날인 것이다. 오늘이 마지막 주말임과 동시에 다음 날이 평일의 시작을 알리는 월요일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런 감정이 드는 게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입을 뻐금거리면서 샘 스미스의 "To Die For"를 흥얼거린다. 


*


나폴리의 작은 길모퉁이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거리의 훌륭한 교향악에 유쾌하게 귀를 기울인다. 일본에서는 막 라디오를 산 사람이 아침부터 밤까지 기계를 틀어놓고, 축음기가 있는 집은 온종일 사자가 울부짖는 듯하다. 유행가만큼 듣기 불쾌한 것도 없다. 술집의 어린 점원이 휘파람을 불며 자전거 타고 지나갈 때 들리는 유행가는 좋아하지만, 길거리에 쿵쿵 울려대는 유행가는 미칠 것만 같다. 음악 전통이 얕은 나라에서 라디오 소리의 홍수를 무질서하게 거리로 쏟아내는 것은 정말이지 이루 말할 수 없는 민폐다. 노래나 연주는 바람이나 물소리와 함께 숨을 쉬며 들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 라디오나 축음기 소리는 아무리 훌륭한 명곡이라 해도 무미건조하다. 


오늘은 일요일이다. 나폴리에는 거리마다 아름다운 음악이 바람과 함께 여기저기 흐르고 있겠지. 


하야시 후미코, <나폴리의 일요일>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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