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의 『조선, 아내 열전』(2022)
기억한다는 것
읽은 날 : 2022.1.15(토)~1.19(수)
쓴 날 : 2022.1.31(월)
면수 : 294쪽
"어머님과 할머님의 삶을 나름대로 짐작하는 가운데, 나는 이미 수년 전 한 가지 다짐을 하였다. 우리 역사에 뚜렷한 자취를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 아내의 목소리를 찾아내서 기록하자. 아내의 역사는 어머니와 할머니에 대한 나의 그리움에서 비롯되었다."(6쪽)
'왜 '아내의 역사'였을까?' <시작하는 글>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이 책은 14세기 말부터 19세기 말까지 5세기 동안에 일어난 아내의 역사를 모두 열다섯 개의 이야기에 담았다."(9쪽) 어머니와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에서 시작된 공부는 조선의 아내 열다섯 사람과 그들의 남편, 같은 시대를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열매맺습니다.
신사임당이나 허난설헌처럼 널리 알려진 아내도 있지만 대부분의 아내는 낯설고 새롭습니다. 다정한 아내, 친구 같은 아내, 선비 닮은 아내, 여장부 같은 아내...... 저는 남편과 큰 그늘 없이 친구처럼 지낸 선산 김씨가 가장 행복해 보입니다. 삶의 크고 작은 격랑을 지나면서 무던하고 평온한 날이 얼마나 고맙던지요.
"책은 한 사람의 역사가가 틈틈이 읽고 메모한 자료를 토대로 작성한 일종의 비망록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9쪽) 쉬운 문체와 깊이 있는 안목으로 담아낸 이야기를 읽으면서 깨닫습니다. 어떤 아내든 소중한 삶이 있으며, 시대와 삶의 여정은 달랐지만 가족을 위해 살아온 나날은 같다고.
대부분 이름 없이 '누구의 아내' 또는 본관과 성씨로 남았지만 살았을 때는 이름이 있었고 누군가의 딸이었을 사람. 한참 전에 읽은 글을 다시 돌아보다 어머니와 할머니, 어떤 이의 아내이자 어머니로 바쁠 친구와 지인들을 마음에 담아 봅니다. "우리의 기억이 그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181쪽) 어쩌면 이 말씀, 오늘날도 그러하겠습니다.
<마음에 담은 글>
예나 지금이나 믿고 지낼 만한 좋은 이웃이 있다면 살맛이 날 것이다. 남편 서거정은 아내 김씨에게 성실한 이웃 김뉴 일가에 관하여 자세히 알려주었을 것이다. 김뉴와 친교 덕분에 그들 내외의 노년은 더욱 따뜻하고 평화로웠을 것으로 짐작한다. 60쪽
무슨 특별한 계기가 있을 때마다 그들 부부는 시를 주고받으며 기쁨을 나누기도 하였고, 서로를 격려하거나 위로하기도 하였다. 107쪽
- 유희춘, 송덕봉 부부에 대한 글입니다.
허씨 부인은 성리학의 경전과 역사책을 두루 읽어 학식이 출중하였으나 남에게 과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지 자신의 견해를 말할 때가 되면 주위의 예상을 뛰어넘는 탁견을 냈다. 147쪽
- 신흠의 친구 이유경의 아내인 양천 허씨에 대한 글입니다.
역사를 뒤돌아보면, 현실에서는 무력하였어도 미래 세대가 나아갈 지향점을 제공한 지식인의 통찰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2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