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혁기의 『나만이 알아주는 나』(2021)

글로 남은 삶

by 스마일한문샘

읽은 날 : 2021.6.9(수)~6.25(금)

쓴 날 : 2021.6.26(토)

면수 : 390쪽


"조선의 지식인들은 평생 쓴 글을 모아 문집을 만드는 일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부여했다. 특히 당대에 중용되어 경세제민의 업적을 쌓은 경우가 아니라면 사후에 그 사람을 기억하게 하는 것은 결국 그가 쓴 글뿐이라고 생각했다."(20쪽) 조귀명(趙龜命 1693~1737)은 그런 면에서 행운아입니다. 평생 글을 썼고 그 글이 문집으로 남았으니까요. 그러나 그의 삶을 돌아보면 녹록지 않습니다. 과거에 합격하여 나라 위해 일하려던 포부는 오랜 병에 꿈으로 남았고, 독특한 글과 시대를 뛰어넘은 사상 때문에 가까운 글벗들에게도 문집 서문을 못 받았습니다.


노론 가문에서 여유롭게 자라 13살에 과거시험장에서 수천 자의 대책문을 순식간에 썼지만 "병과 함께 태어났고 병과 함께 자라"(41쪽) "마음으로 즐기는 것과 일삼아 경영하는 것 어느 하나 병 때문에 제대로 할 수 없었"(41쪽)던 사람. 감기만 앓아도 모든 일이 버거운데 평생 병을 안고 살았다면 얼마나 우울했을까요. 삶의 대부분을 방에서 보낸 조귀명이 그나마 할 수 있던 건 책읽기와 글쓰기, 글씨와 그림 감상하고 품평하는 일이었습니다. 자주 앓고 30살에 구안와사까지 겹쳐 사람 만나기를 꺼리던 그에게 그림과 글씨, 문학은 자신과 세상을 이어 주는 통로였습니다.


병 때문에 일반적인 양반들과 다른 길을 걸었던 조귀명은 22살에 「병해(病解)」 두 편에서 자신이 왜 온갖 병을 겪어야 하는지 분석하여 밝힙니다. 병 때문에 여색과 문장에 기력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었고, 병은 몸을 힘들게 할 뿐 "그대가 그대인 까닭은 원래 그대로"(93쪽)임을 깨닫게 됩니다. 건강한 사람은 건강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오래 앓던 사람이 하루라도 괜찮아지면 "온몸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손발이 편안해져서 홀연 자기 몸조차 잊어버릴 정도"(94쪽)가 된다며 "나는 남들에게 없는 고통을 가졌지만, 남들에게 없는 즐거움 또한 가졌다"(95쪽)는 그!


남과 다른 삶을 살며 유학과 불교, 도교를 아우르면서 얻은 통찰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려 했던 조귀명의 발자취는 결국 글로 남았습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당당하게 자기 길을 걸은 사람, "유자도 아니고 불자도 아니며 한유도 아니고 유종원도 아닌, 우뚝하게 홀로 선 간천자"(317쪽)이고 싶었던 그의 소망이 이루어진 걸까요. 삶이 내 맘 같지 않았지만 가장 자기다운 방식으로 삶을 뛰어넘은 사람의 글, 그 글을 엮고 읽고 연구하며 풀어낸 사람들의 따뜻한 시선이 읽는 내내 진한 여운으로 일렁였습니다.


<마음에 남은 글>


그분은 용모가 마치 옥처럼 맑고 투명하였고, 사람들과 말을 할 때에는 옷도 가누지 못할 듯 몸이 허약하고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처럼 과묵하셨지. 하지만 그 중심을 타진해보면 끝없이 넓고 넓어서 다함이 없는 진리를 품고 계셨다네. 87쪽


사후 거의 300년 만에, 내세울 만한 역사적 사건에 이름 한 번 올린 적 없는 자신의 삶을 구석구석 살펴보고 그가 자신만의 깨달음에서 길어올려 자기 언어로 빚어낸 작품들을 한 편 한 편 읽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그의 남다른 문학적 자부심에 값하는 유일한 보상이지 않을까. 88쪽


정제된 마음과 숙련된 손이 온전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134쪽


세계를 보는 관점을 달리하면 삶의 태도가 달라지고,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198쪽


육신의 질병은 그에게 있어서 평생의 제약이었지만 동시에 가능성이기도 했다. 320쪽


일상의 사소한 일에도 남과 다른 시선으로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그렇게 얻은 깨달음을 독특한 구성으로 표현하고자 단단하게 애쓴 시간이 축적되어, 오래도록 읽힐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을 남길 수 있었다. 321쪽


조귀명이 세상을 떠난 지 300년이 다 되어간다. 그는 자신을 알아줄 자운이 없음을 탓할 것 없이 스스로 자신의 자운이 되면 그만이라고 했다. 하지만 오늘 그의 글을 읽으며 작지만 경쾌한 지적 울림을 누릴 수 있다면 그런 한 사람 한 사람이 간천자를 알아주는 자운이 아닐까. 간천자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로도 없을 유일무이한 존재였듯이, 이 시대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운 역시 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이 홀로 우뚝 선 존재다. 3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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