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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한문샘 Oct 03. 2022

김명호의 『홍대용과 항주의 세 선비』(2020)

어렵지만 고마운 책

읽은 날 : 2021.2.11(목)~4.24(토)

쓴 날 : 2021.4.25(주)

면수 : 863쪽


두 달 반 가까이 읽었습니다. 어렵지만 고마운, 아껴 읽고 싶은 책입니다.


#1 삶의 변곡점


"1765~1766년의 북경 여행은 홍대용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를 분기점으로 하여 그의 생애는 선명하게 두 시기로 나뉜다. 전반기가 대망의 여행을 위한 오랜 준비 기간이었다면, 후반기는 여행 체험을 충실히 기록하고 주위에 전파하는 한편 여행 당시 교분을 맺은 청나라 지식인들과 서신 교류를 지속하면서 사상적 전환을 모색한 시기라 할 수 있다."(16쪽)


누구나 삶의 변곡점이 있습니다. 홍대용에게는 중국 여행이 그랬습니다. 북경에 다녀왔고, 천주당과 유리창을 찾았으며, 천문 역법을 탐구하면서 당금 연주법을 익혔습니다. 무엇보다 오랑캐라 여겼던 사람들과 우정을 맺었고, 청나라 문물의 특징을 규모가 광대하고 마음 씀씀이가 세밀한 '대규모 세심법'(392쪽)으로 요약했습니다. 한 사람이 틀을 깨고 새로운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건 어렵고 뜻깊은 일입니다. 그래서 더 오래 읽었습니다.


#2 국경을 넘어선 우정


"2월 6일 홍대용은 엄성과 반정균의 답장에 대한 감사 편지를 썼다. 이 편지에서 그는 "붕우(朋友)는 오륜에 속하니 어찌 중하지 않겠습니까. 천지는 위대한 부모이니 그 사이에서 태어난 동포끼리 무슨 화이(華夷)의 구분이 있으리오. 두 형이 저를 지기로 허락하셨으니, 저도 당당하게 지기로 자처하겠습니다."라고 우정론을 폈다."(290쪽)


역사적인 순간! 읽는 내내 가슴이 뛰었습니다. 나이도 국적도 사는 곳도 다른 그들이 같은 날 간정동에서 만나 사흘만에 절친이 된 모든 과정이 놀라웠습니다. 홍대용은 서른 여섯, 엄성은 서른 다섯. 반정균은 스물 다섯, 나중에 합류한 육비는 마흔 여덟. 만주족의 나라에서 한족으로 외로웠을 세 선비와 명나라에 대한 공감으로 맺어진 우정은 깊고 맑음을 알아보는 안목에 더더욱 빛납니다.


#3 빈틈없고 깊은 글


'다 읽었다!' 2021년 4월 24일 오후 10시 22분. 미주와 참고문헌 목록까지 빠르게 읽으니 11시 23분. '책을 펴내며' 5쪽(5~9쪽), 서론부터 결론까지 536쪽(15~551쪽), 미주와 참고문헌 목록, 찾아보기, 도판 목록이 309쪽(555~863쪽). '왜 이 이야기를 길고 깊게 썼을까?' 73일 틈틈이 시간 아껴 읽었습니다.


글의 큰 줄기는 하나입니다. 연암 박지원 평전 준비하다 홍대용이라는 큰 산을 만나(5쪽) 정확하고 깊이 있게 파악하려 5년 동안 쓰고 다듬은 책. 그래설까요. 학술서인데 비문이나 오탈자 없이 글이 빈틈없고 깊습니다. 행간 곳곳에서 오랜 공부와 성실한 연구의 흔적을 읽습니다. 감사함과 숙연함을 안고 책을 덮습니다.


<마음에 남은 글>


연못 북쪽에 자리한 초가집인 홍대용의 거실은 '애오려'(愛吾廬)라고 이름 지었다. 이는 "나는 내 오두막을 사랑하네"라고 노래한 도연명의 시구에서 명칭을 따온 것이다. 애오려는 안방과 곁방, 그리고 '향산루'(響山樓)라는 다락과 '담헌'(湛軒)이라는 마루로 이루어져 있었다. '담헌'은 스승 김원행이 수촌 집을 방문했을 적에 현판에 써 준 당호였다. 73쪽

- 글자 하나하나에 담긴 뜻이 깊습니다.


원거리 여행에 대비해 매일 근력을 기르는 한편 역관에게 배우거나 역학서(譯學書)를 보며 중국어도 여러 해 공부해 두었다. 86쪽

- '아, 역시!' 감탄하며 읽었습니다.


<간정록 후어>에서 홍대용은 엄성에 대해 "한겨울의 소나무 같은 특별한 지조와, 눈에 덮인 대나무 같은 해맑은 풍모"를 갖추었다고 평했다. 166쪽

- 홍대용과 가장 마음이 잘 맞았던 엄성. 홍대용 초상화도 엄성의 작품입니다.


북송의 성리학자 장재(張載)가 그의 <서명(西銘)>에서 '만민은 천지를 부모로 한 나의 동포'라고 주장한 논리에 의거하여, 중국인과 외국인 사이에도 진정한 우정이 가능하다고 역설한 것이다. 290쪽


사람의 도리는 마음에 있지 책에 있지 않으며, 벗 사귀는 도리는 질(質: 진실된 마음)에 있지 문(文: 겉치레)에 있지 않습니다. 320쪽

- 항주 세 선비와 또 다른 축을 이루는 청나라 왕자와의 만남. 교양은 적지만 '천진을 잃지 않은 질박한 사람'(320쪽)을 벗으로 사귀어야 한다는 마음씀이 맑습니다.


하지만 홍대용은 겉으로 드러난 현상을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아가 청 문물의 공통 특징과 청나라의 번영을 낳은 원동력에 관해서도 숙고했다. 3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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