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마일한문샘 Oct 04. 2022

이덕무/정민의 『열여덟 살 이덕무』(2019)

새해 50일 전 깊이 새기는 말

처음 읽은 날 : 2019.3.3(주)~3.6(수)

다시 읽은 날 : 2020.11.8(주)~11.14(토)

쓴 날 : 2020.11.15(주)

면수 : 265쪽


새해 50일 전 이덕무를 읽었습니다. 맑고 깊은 그의 글을 보면 제 마음도 차분해집니다. 열여덟 살 이덕무는 이덕무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까지 쓴 글을 우리말로 옮기고 풀어 쓴 책입니다. 가장 오랜 무인편(戊寅篇)은 열여덟, 울림이 큰 세정석담(歲精惜譚)은 스물 세 살. 20대 어느 날 썼을 적언찬(適言讚)과 스물 한 살에 쓴 매훈((妹訓)까지 읽다 보면 '이 나이에 난 뭘 했지?' 싶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모범생의 자기 다짐'(6쪽) 같은 무인편 부제를 오래 읽었습니다. '내가 열여덟 살 때 품었던 마음'(15쪽)! 십대 후반, 그 어느 때보다 푸르른 감성과 꿈 많은 열정이 일렁이던 나날들. 물론 20세기 후반 대한민국 청소년이었던 저와 열여섯에 혼인해 가정을 이룬 이덕무의 깊이는 다릅니다. 하지만 그가 열여덟 살에 쓴 글을 잃었다 다시 찾아 '옛 벗과 서로 만난 것 같'(16쪽)았듯, 저도 그가 만든 행간에서 어린 날을 잔잔히 마주합니다.

 

세정석담 서문은 아끼는 글입니다. 손글씨로 정리해서 두고두고 읽습니다. '세월과 정신이 아까운 이야기'를 열면 스물 세 살 이덕무가 저를 깨우는 듯합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가장 아까운 것은 세월이요 정신이다."(98쪽)부터 "계미년 7월 16일 해질 무렵, 사이재거사는 적는다."(100쪽)까지 읽으면 가을 햇살, 어스름, "임술년 7월 기망(旣望 : 음력 16일)에" <적벽부>까지 어른어른.

 

소설이나 명나라에 대한 글은 제 생각과 다르지만, 맑은 마음과 온유한 성품에 아껴 읽었습니다. 원칙주의자이면서도 삶을 관조할 줄 알며 어린 누이 위해 글 써 주는 다정한 사람. 260여 년 전 옛사람 글이 아담한 책으로 늦가을 어스름 아래 한 자 한 자 다가옵니다. "선비는 마음을 거울처럼 밝게 하고 몸가짐을 먹줄처럼 곧게 지녀야 한다."(20쪽, 무인편) 한 해를 마무리하며 깊이 새깁니다.

 

<마음에 남은 글>

 

내가 엄한 스승이나 벗이 가르쳐 주고 이끌어 주는 유익함이 없었음을 탄식하면서도 거칠게나마 학문을 하고 선한 사람이 되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은 또한 가정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17쪽, 무인편, 이덕무

 

남에게 조금이라도 훌륭한 점이 있다면

반드시 기억해서 잊지 않는다.

도리어 마음으로 이를 사모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그 말을 전해야 한다.

남의 잗단 허물은 반드시

가려 덮어 드러내지 않는다.

남에게 알리지 않을 뿐 아니라

내 마음에 경계로 삼는다. 40쪽, 무인편, 이덕무

 

말은 간결하게, 마음은 고요히. 89쪽, 정민


얼굴 위에 교만의 기운을 버리고, 말할 때도 교만이란 글자를 버려야만 바야흐로 망령된 남자가 되지 않는다. 112쪽, 세정석담, 이덕무

 

마음속에 한 점의 시기조차 없어야 호남자이다.

내가 늘 이렇게 되려고 힘써 왔다. (중략)

하지만 또한 말만 쉽고 행하기가 어려울까 염려되니 어떻게 해야 하나?

남의 작은 선(善)을 아끼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면 된다. 145쪽, 세정석담, 이덕무

 

나는 깊은 연못처럼 침묵하고, 우레같이 소리 지르리라. 시동(尸童)처럼 미동도 않고 있다가, 용처럼 오색구름을 올라타고 하늘로 솟구치겠다. 148쪽, 정민

 

도는 눈앞에서 날마다 쓰는 사이에 있으므로 몹시 얕고도 가깝다. 얕기로 말하면 물 뿌리고 비질하며 응대하는 것만 한 것이 없고, 가깝기로는 어버이를 사랑하고 어른을 공경하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다. 156쪽, 세정석담, 이덕무

 

하늘만 올려다보던 눈길을 거둬 발밑부터 살피겠다. 159쪽, 정민

 

옛것만으로도 안 되고 새것만으로도 안 된다. 이 둘의 조화와 균형 속에 문화의 힘이 자란다. 176쪽, 정민

 

사람의 허물은 언제나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지점에서 더하여진다. 182쪽, 세정석담, 이덕무

 

늦는다고 조급해할 것 없다. 알아주지 않는다고 성내지도 마라. 그저 내 참됨을 간직하고, 내 운명을 관조하라. 미혹에 빠져들지 않고, 남의 말에 휘둘리지 않으며, 내 마음이 기쁜 일을 하면서, 늘 새로워질 것을 다짐하라. 좋은 벗과 어깨 겯고 이 세상을 건너가면서, 하늘이 내게 허락하는 것들과 함께 즐기며 건너가리라. 이것이 내가 꿈꾸는 쾌적하고 쾌활한 삶이다. 229쪽, 정민

 

유순함으로 절제하되 따스함을 잃어서는 안 된다. 245쪽, 정민

 

목소리를 낮춰서 온화함을 길러야 한다. 250쪽, 매훈, 이덕무

 

부지런히 애쓰면서 게으르지 않은 사람을 선인(善人)이라 한다. 252쪽, 매훈, 이덕무

매거진의 이전글 이명학의 『어른이 되어 처음 만나는 한자』(202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