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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한문샘 Oct 04. 2022

백승종의 『문장의 시대, 시대의 문장』(2020)

반갑고 맑은 책

읽은 날 : 2020.9.24(목)~9.26(토)

쓴 날 : 2020.9.26(토)

면수 : 260쪽


오래 기다린 책입니다. 온라인에서 몇몇 글을 미리 봐서 더 그랬니다. 저는 옛글을 보면 마음이 푸근해지고, 오래된 글 속에서 삶의 빛깔과 향기를 찾아가는 일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더 반가웠고 조금 빠르게 읽었습니다.


"현대 사회가 당면한 문제의 본질은 정보와 자료의 결핍에서 비롯하지 않았다. 정보와 자료가 넘쳐나는데도 이를 꿰뚫을 수 있는 날카로운 문제의식과 통찰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이 시대의 약점이다."(255쪽) 원격수업으로, 첫 부장 업무로 자주 길을 잃던 제게 문제를 읽고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은 매우 절실했습니다. 시대는 다르지만 어느 정도 고민을 끌어안고 살았던 옛사람들이 글로 마음 다독이고 자신의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돌아보면 어느 때든 크고작은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았던 듯합니다. 그때마다 뜻밖의 글이 톡톡 찾아와 들뜬 마음 가라앉히고 고단한 나날 달래 주었습니다. 책 속에 나타난 조선 시대 문장가들이 글 쓰고 마음 풀어내던 시대와 상황은 저마다 다릅니다. 어떤 이는 글로 시대적 사명에 화답했고, 또 다른 사람은 일상의 풍경을 담아냅니다. 예술, 우정, 가족애, 우국충정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담긴 글을 읽다 보면 "지혜와 통찰이 깃든 문장은 그를 만나는 사람들의 운명을 바꿔놓는다."(256쪽)에 가만가만 밑줄 긋게 됩니다.


서른 네 살 나이 차와 당파를 뛰어넘은 이안눌과 윤근수의 우정,  언제 읽어도 설레는 이덕무과 그 친구들 이야기를 오래 읽었습니다. 김정희의 '실사구시'를 '사실에서 진리를 찾는다'로 담아낸 부분도 '아!' 하면서 읽었습니다. 무엇보다 행간에서 깊은 감성을 배웠습니다. 도서관 다녀오다 하늘을 더 오래오래 보았습니다.


<마음에 남은 글>


문장이 드넓은 바다라면 나는 그 바닷가를 산책하며 주운 몇 개의 조개껍질을 엮어서 이 책을 만든다. 8쪽


그때나 지금이나 많은 지식인이 "책은 그저 책일 뿐이다"라며 배움을 실천하려는 이를 비웃는다. 그러나 세종은 책에 담긴 지식을 통해 개인의 삶을 바꾸고 국가의 운명도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숱한 반대를 무릅쓰고 그가 한글을 창제한 이유도 그 점 때문이었다. 세종은 백성이 글을 읽으면 세상이 달라진다고 확신했다. 73쪽


우리에게도 문장은 역시 희망이다. 73쪽


19세기 중반 중국에서는 서양의 과학기술과 의학을 한문으로 번역한 책자가 다수 간행되었다. 최한기는 서울의 자택에 칩거하며 이런 책들을 구해 열심히 읽었다. 그리고 자율적 근대화를 꿈꾸는 신지식인이 되었다. 130쪽


평생토록 변하지 않는 정, 잔잔하되 깊은 마음이라야 우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1쪽


우정은 서로의 문화에 대한 깊고 폭넓은 이해를 선사한다. 개인간에 이루어지는 활발한 교류는 결국 국가 간에 평화의 싹을 키우고, 기술과 학문을 발전시키는 힘이 된다. 우정은 국가적 이익을 북돋우고, 문명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208쪽


그들(정약용과 혜장)의 담화는 영혼의 이중주와도 같아, 서로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준 모양이었다. 231쪽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 곳곳에서는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 문장이 태어나고 있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과거의 명문장을 읽고 영감을 얻어 이웃에게 버거운 일상의 짐을 덜어주는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을 건네고 있을 것이다. 256쪽


어질고 아름다운 문장에 깃든 위대한 힘, 영혼을 뒤흔드는 그 힘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머나먼 미래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을 이끄는 한 줄기 빛이다. 2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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