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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한문샘 Oct 05. 2022

정민의 『파란 2』(2019)

잃음을 뛰어넘은 삶

읽은 날 : 2019.9.6(금)~9.7(토)

쓴 날 : 2019.9.12(목)

면수 : 383쪽


『파란1권에서 얻고 쌓던 다산은 2권에서 하나하나 잃습니다. 서른에 사촌동생, 서른 하나에 아버지, 서른 아홉에 정조, 마흔에 셋째 형. 뜻밖의 귀양으로 낯선 곳에 떨어져 모든 희망이 끊어진 듯합니다. "서울에서 천주교도들의 목이 줄줄이 잘려나가는 동안 다산은 흉몽에 시달렸다. 캄캄한 방에서 잠을 깨면 식은땀이 흥건했다. 소문이 꼬리를 물었으나 확인할 길은 없었다. 꽉 닫힌 방문은 좀체 열리지 않았다."(351쪽)


그러나 다산은 차츰차츰 일어섭니다. 지독한 현실에 분노하고 부정하다 점차 마음을 추스릅니다. 그때 그를 지켜준 건 아들과 둘째 형의 편지, 하인이 데려온 추록마입니다. 겨울 눈 속에 갑자기 달아났다 석 달만에 제 발로 돌아온 말은 새옹지마와 놀랍도록 닮았습니다. 집안 난리에 거의 모든 살림을 빼앗긴 다산과 가족들에게 추록마는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 존재였을까요.


유배지 생활이 두 달쯤 지났을 때 다산은 백언시(百諺詩)에 몰입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앞부분에는 중국 속담, 뒤편에는 우리나라 속담을 4언체 가락에 얹어 갈무리합니다. 막막한 나날 "三歲之習(삼세지습) 至于八十(지우팔십)" 같은 한역 속담 한 자 한 자 쓰며 마음 달랬을 뒷모습이 짠합니다. 시골 사람들을 위한 약처방 촌병혹치도 장기 귀양 시절에 썼습니다. 아, 이아술기해방례변도 있습니다.


황사영 백서 사건으로 10월 20일에 다시 체포된 다산은 11월 9일 강진으로 떠납니다. 또다시 죽을 고비 넘겼지만 까칠한 이안묵이 기다리는 강진. 다산은 이 위기를 어떻게 넘길까요. 삶을 바꾼 만남다산 증언첩에서 강진에서의 열여덟 해를 읽었지만, 그때 지금 제 나이보다 더 젊었을 다산은 하루하루가 먹먹하고 버거웠을 듯합니다. 3권에선 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기대됩니다.


<마음에 남 글>


다산은 임금의 의중을 한발 앞서 읽었고, 원하는 바를 알아 꼭 맞게 아니 그 이상으로 처리했다. 55쪽


 '여유(與猶)'는 노자(老子)의 도덕경 제 15장 속 "겨울에 시내를 건너는 것처럼 조심하고, 사방 이웃을 두려워하듯 경계하라(與兮若冬涉川 , 猶兮若畏四鄰)"라는 구절에서 따온 말이다. 비방을 자초하지 않고 조심조심 살아가겠다고 했다. 80쪽


나의 생각에 가장 놀라운 것은 제작 단가를 낮추기 위해 수레 각 부위의 목재를 다르게 구성한 것이다. 하중을 많이 받는 부위는 목질이 단단한 소나무를 썼고, 가로로 대는 나무는 참나무, 세로로 대는 나무는 생참나무를 써서 재목에 드는 비용을 최대한 절감했다. 그 결과 수레 한 대의 제작비는 12냥 내외였고, 전체 공정에 필요한 수레 70대를 만들어도 840냥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107~108쪽


청년 다산은 어디서나 보석처럼 반짝였지만, 생각지 않은 곳에서 예각을 드러냈다. 잠깐 머금었으면 싶은 대목에서도 자기 생각과 조금만 다르면 멈추지 않고 바로 튀어나왔다. 이삼환은 다산에게, 주자가 진량(陳良)에게 준 편지에서 "예로부터 영웅은 전전긍긍하며 깊은 물가에 임한 듯 살얼음을 밟는 듯한 가운데서 나오지 않음이 없었다"라고 한 말을 건네, 함축 공부에 더 힘을 써서 자중할 것을 충고했다. 이삼환의 다산 평에는 원로다운 혜안이 엿보인다. 그는 그 열흘로 누구보다 다산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았다. 216쪽


더 이상 현란한 바깥 향기에 취해 기웃대지 않겠다. 내가 지닌 본연의 향기를 지켜나가겠다. 다산은 퇴계의 편지글을 읽으며 이런 마음을 다잡았다. 239쪽


그는 늘 이랬다. 의표를 찌르고 예상을 빗나갔다. 하지만 모두들 그 결과에 놀라고 과정에 감탄했다. 그 바탕에는 늘 백성에 대한 사랑이 깔려 있었다. 핵심 가치를 세우고 합리적 절차로 진행해 누구든 승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곡산 시절 다산의 활약은 실로 눈부신 데가 있었다. 각종 아전의 비리와 못된 관행이 발을 붙일 수 없었다. 늘 허덕이던 재정이 충실해졌다. 시달림만 당하던 백성들이 처음으로 국가로부터 존중받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286~2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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