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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한문샘 Oct 06. 2022

백승종의 『중용, 조선을 바꾼 한 권의 책』(2019)

나에게 『중용』이란 무엇인가

읽은 날 : 2019.7.10(수)~7.20(토)

쓴 날 : 2019.7.20(토)

면수 : 295쪽

* 3년 전 글을 다듬었습니다.


바쁜 학기말에 틈틈이 읽었습니다. 한문 공부하고 가르치기도 하지만 중용은 은근히 어렵습니다. 고등학교 한문 시간에는 잘 몰랐는데, 스무 살 넘어 "君子必愼其獨也(군자필신기독야 : 군자는 그가 혼자 있을 때를 조심한다.)"에 꽂히면서 좋은 말이 있으면 수첩에 색펜으로 옮겨 적었습니다. 한 자 한 자 쓰다 보면 제 마음에도 고운 햇살이 찾아들곤 했습니다.


문사철 중 철학에 약한 제게 중용, 조선을 바꾼 한 권의 책은 쉽지 않았습니다. 역사 인물 부분은 술술 넘어가는 철학 쪽으로 깊이 들어가면 살짝 헤맸습니다. 그래도 퇴근길 버스에서 야금야금 읽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장. 방학 첫날 더 오래 읽으니 생각이 조금 정리되는 듯합니다. 제가 아는 구절을 새롭게 풀이한 부분은 차근차근 새겨 읽었습니다.


책 속에서 중용은 책 이상입니다. 이덕무와 조익 같은 선비에게는 자기를 가다듬고 바르게 세우는 힘이었고, 송시열이나 정조에게는 성리학으로 무장한 문화권력입니다. 송시열과 윤휴의 대립을 읽을 때는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습니다. 앎이 칼이 될 때 얼마나 무서운지! 윤휴가 자유롭게 중용 읽고 풀어낸 이익과 정제두를 안다면 얼마나 부러웠을까요.


저에게 중용은 친구 같은 죽비입니다. 어떤 날은 따스한 차 한 잔. 무엇보다 숨가쁜 일상에서 스스로를 지키는 힘입니다. 이덕무는 24살에 관독일기, 조익도 같은 나이에 <중용설>을 썼습니다. 읽고 쓴 대로 산 그 마음 배워야겠습니다. "'나 한 사람의 도덕성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는 이 책의 주장은 선비들의 가슴에 희망의 불씨와도 같았다."(86~87쪽)


<마음에 남 글>


세상은 날마다 소란스럽고 우리의 일상은 별 의미도 없는 일로 분주하기만 하다. 마음에 뚜렷한 구심점이 없으면 세파에 휩쓸리기 쉽다. 이럴 때일수록 매사에 더욱 신중하고 허황되지 않은 목표를 세워, 꾸준히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6쪽


한 마디로 '중용'이란, 사물의 본질에 닿아 있으면서도 가장 적절하고 평범해 보이는 사고와 행동이다. 가장 쉽고도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중용을 지키며 사는 것이다. 7쪽


중용의 정신으로 가득한 사람은 조용하지만 힘차고, 유별나지 않으나 깊은 인간적 매력을 가지고 있다. 8쪽


그들은 중용 23장에서 큰 힘을 얻었다. "오직 천하의 지성至誠이라야 자신의 성품[性]을 다하나니, 자신의 성품을 극진히 하면 타인의 성품도 이룰 수 있다. 타인의 성품이 이뤄지면 사물[物]의 성품도 이룰 수 있다. 사물의 성품을 이룬다면 하늘과 땅이 변화하고 성장[化育]하게 도울 수 있다. 하늘과 땅의 변화와 성장을 도울 수 있다면 하늘과 땅과 함께 그 작용에 참여하리라." 시작은 나 한 사람의 성실함[誠]이지만 이것을 계속 확대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하늘과 같은 위대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중용이 약속하는 천인합일은 이런 것이었다.

16세기 후반 조선의 선비들은 중용을 통해 큰 용기를 얻었다. (중략) 중용에 담긴 희망의 메시지, 곧 '나 한 사람의 도덕성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는 이 책의 주장은 선비들의 가슴에 희망의 불씨와도 같았다.  86~87쪽

- 이 책에서 가장 고맙고 뭉클한 부분이었습니다. 오래 새깁니다.

  

정자가 이미 말했듯이, 순임금은 새벽에 닭이 울 때 일어나서 아직 어떠한 사물도 접하지 않았을 때 오직 공경[敬]하는 마음을 갖고자 노력했다. 이것이 바로 선을 실천하는 것이라 했다. 176쪽


이익은 중용에서 마주친 평범한 표현에서 정치적 교훈 또는 일상생활의 심오한 교훈을 발견하고자 노력했다. 215쪽


문헌을 비판적으로 연구하면 뜻밖의 결과를 얻는 경우가 적지 않다. (중략) 요컨대 공자도 맹자도 어려서 아버지를 잃지 않았다. 누구도 확정적으로 말하지 못한 이런 사실을 이익이 자기 손으로 찾아냈다. 217, 218쪽


정성에서 출발해 밝아지는 것이 성품이다 242쪽, 중용 21장


요순시절부터 '중中'이라는 글자만 말했을 뿐이다. '용庸'이라는 글자를 더해 사용한 것은 공자였다. '중'이란 평상平常, 곧 일상의 도리이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항상 실천해야 하는 것, 잠시라도 벗어나면 안 된다는 뜻에서 중용이라 했다. 245~246쪽


선비라면 스스로를 북돋워 성현이 추구한 바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이 사람 조익은 어리석으나 중용에 도달하기를 목표로 삼아 죽도록 지혜와 실천에 힘쓸 것이다. 247쪽, 조익, <중용설>


기쁨, 성냄, 슬픔, 즐거움이 나타나기 이전의 상태를 중中이라 한다. 그것이 움직여서 절도에 맞으면 조화롭다[和]고 한다. 252쪽, 중용 1장


정조는 중용 공부를 통해 실생활에 유용한 지식과 고상하고 추상적인 고도의 학문적 세계가 하나로 이어지기를 바랐다. 273쪽

삼척 가는 버스에서 다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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