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첫날 서점에 갔습니다. 아이들 책 고르다 제 책도 샀습니다. 전에 본 글도 있지만 새 글이 더 많습니다. 사흘 내내 기쁘게 읽었습니다.
『사람을 읽고 책과 만나다』는 정민 선생님 산문집입니다. 『체수유병집』과는 또 다른 따뜻함이 있습니다. 이기석, 김도련 선생님 이야기에 제 은사님 떠올라 뭉클했고, 조지훈-박목월 두 어른의 첫 만남은 이오덕-권정생 선생님과 어찌 그리 닮았는지요.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고여 있던 시간이 보석처럼 반짝이며 출렁댔"(102쪽)습니다.
열한 살 어느 날 제 방이 생겼습니다. 부모님이 방 한 칸 더 얻어 오빠, 동생 주시면서 오빠 방을 물려받았습니다. 창고에 가려 햇살이 반쯤 들어오지만 동향이라 아침 햇빛 눈부시던 그 방에서 스물일곱 2월까지 책 읽고 일기 썼습니다. 스마트폰 없던 시절 늦은 밤까지 읽고 쓰며 반짝임과 설렘으로 하루하루를 채웠습니다.
이번 책 읽으면서 아주 오랜 즐거움을 되찾았습니다. 읽고 쓰기만 해도 행복하다는 걸 깨닫기까지 꽤 먼 길을 돌아온 듯합니다. 차분하게 읽고 반듯한 글씨로 한 자 한 자 쓰는 즐거움, 남에게 보여 주기보다 스스로 만드는 기쁨을 평생 잘 간직하고 싶습니다. 삶의 선물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마음에 남은 글>
자기 그림자를 밟지 않으려고 햇빛을 마주 보며 걸어갔던 사람, 그(이덕무)의 시는 그래서 뼛속까지 맑다. 17쪽
그저 매일 만나고 부딪칠 때는 모르다가 상대가 시련에 처하고 역경의 자리에 놓이면 더 도타워지는 것이 인간의 정리다. 그런 정이 있기에 마음을 다잡아 세워 다시 툴툴 털고 일어날 수가 있다. 27쪽
꿈이 있기에 인생이 그윽한 깊이를 지닐 수 있고, 그림자가 있어 삶에 여백이 깃들 수 있다. 40쪽
제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했는데, 문득 돌아보니 선생님이 늘 내 곁에 계셨다. 66쪽
미시사는 역사 연구 방법론의 한 갈래겠지만, 읽는 이의 입장에서 보면 보다 생생하고 살아 있는 역사와 만나게 되는 설렘이 있다. 그랬구나, 그때도 똑같았구나. 어쩜 그럴 수가 있지? 이런 감탄사를 역사 속에서 찾고 싶은 것이다. 21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