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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한문샘 Oct 07. 2022

정민의 『잊혀진 실학자 이덕리와 동다기』(2018)

유배객의 선물

읽은 날 : 2018.11.24(토)~11.30(금)

쓴 날 : 2018.12.8(토)

면수 : 433쪽


"형인 이덕사의 상소로 하루아침에 온 집안이 멸문에 가까운 화를 입었다. 아무 죄 없던 자신과 아들 셋이 연좌되어 귀양을 갔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이후 그는 진도 유배지의 흙바람 벽 골방에서 귀뚜라미 울음소리 속에 세상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글을 쓰며 20년 가까운 세월을 숨죽여 살았다."(66쪽)

     

이덕리(1725~1797)를 생각하면 먹먹합니다. 다산보다 기구했을 뒤안길에 울컥하고, 오랜 기억 불러모아 한 자 한 자 쓰던 삶에 숙연해집니다. 뜻밖의 일로 모든 것을 잃었지만 읽고 쓰며 자신을 넘어선 사람! 그의 발자취가 묵직하게 마음을 울렸습니다. 그래설까요. 찬찬히 아껴 읽었습니다. 보는 내내 뭉클했고 한 줄 한 줄을 무심히 넘기지 못했습니다.


"새롭게 확인한 이덕리는 그저 동다기의 저자로만 기억될 인물이 결코 아니었다. 국방 관련 제안이 담긴 상두지를 비로해 최초로 국가 전매의 차 무역을 주장한 <기다>, 금연 정책을 확고히 시행함으로써 국가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외친 <기연다>에 이르기까지, 18세기의 잊힌 실학자 한 사람이 깊고 오랜 어둠 속에서 밝은 빛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오는 느낌이었다."(30,32쪽 : 31쪽에는 강심만록 표지 사진이 있습니다.)


강심상두지. 21년 유배객의 애틋한 선물이 여러 사람의 맑은 손으로 세상 밖에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귀양지에서 어지러이 흩어졌을 원고를 강심으로 정리한 이시헌, 그 책을 고이 간직한 이효천 선생님, 단정한 해서로 강심만록을 필사한 사람, 상두지 초고를 책으로 엮은 정약용과 이정, 그리고 귀한 자료를 선뜻 보여 준 분들... 여기에 12년간 시간 아껴 퍼즐 조각을 기꺼이 맞추어 간 연구자의 세심한 헌신이 있었습니다.


"강심의 기록을 통해 볼 때, 이덕리는 진도에서 차를 직접 만들어보기까지 했던 듯하다. 효과가 괜찮았다. 맛도 좋았다. 이 체험을 살려 그는 <기다>를 저술하여 차 제조 방법과 차 전매 제도 운용 방안을 체계적으로 설명했다. 이와 별도로 상두지를 저술해서 차 판매로 얻어진 재정을 국가 안보에 어떤 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장대한 구상을 얹어 구체적인 청사진을 그려 보였다."(201쪽)


세상 끝 같았던 진도 한자락, 부서지고 비 새는 집에서 해진 옷에 이 잡으면서도(133쪽) 이덕리는 큰 꿈을 꾸었습니다. 그 마음을 글로 남겼고 넓은 포부 알아 준 어른들이 있었기에 따스한 방 한켠에서 옛사람을 읽습니다.

     

<마음에 남은 글>

     

처음 만났을 때는 까칠해서 좀처럼 곁을 안 주더니 한번 마음을 열자 속도 없이 부드러운 분이었다. 26쪽

- 2012년에 돌아가신 이효천 선생님. 다산의 막내 제자 이시헌의 5대손입니다.

     

누누이 말하지만 자료는 공유되고 공개될 때 비로소 날개를 단다. 35쪽

- 임용고사 공부할 때 절실히 느꼈습니다.   


작품 속의 구절구절은 모두 함축이 깊고, 행간이 있다. 그(이덕리)는 옛사람과 자신을 계속 겹쳐 보이면서 그의 심정을 서술하는 양 자신의 이야기를 담곤 했다. 대단히 독특한 글쓰기 연작이다. 117쪽


올빼미가 장마의 조짐을 미리 알아 뽕나무 뿌리로 둥지의 틈새를 막듯이, 자신은 상두지를 지어 장차의 환난에 대비하자고 주장한다는 뜻을 천명했다. 137쪽


대저 사자는 코끼리를 잡을 때도 온 힘을 다하고, 공을 굴릴 때도 온 힘을 다한다. 온 힘을 다하지 않고 능히 성취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없다. 169쪽, <기연다>


차는 더 이상 괴상한 음료가 아니라, 뜻밖에 잘하면 엄청난 국부를 창출할 수 있는 유형의 자산이면서 입맛과 건강을 담보해줄 블루오션이었다. 202쪽


이덕리는 자신의 저술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고자 했다. 334쪽


2013년 10월에 지범공파화수회의 중의로 이곳 고동산하 종산에 유택을 모셔와 형제분이 나란히 눕게 되었다. 341쪽, 이덕사 묘갈명

- 237년만에 무덤으로나마 만난 이덕사와 이덕리 형제.. 이 부분에 울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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