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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한문샘 Oct 07. 2022

진경환의 『조선의 잡지』(2018)

그들의 일상, 정밀한 생활사

읽은 날 : 2018.9.11(화)~9.19(수)

쓴 날 : 2018.9.20(목)

면수 : 394쪽


눈 빠지게 읽었습니다. 다른 책보다 여백과 줄 간격이 적은데도 394쪽, 마지막에 붙은 잔글씨 주석이 1000여 개! 하나라도 더 자세하고 정확하게 알려 주려는 작가님 마음이 보입니다. 그래설까요. 눈은 피곤했지만 내용이 알차 읽는 내내 감탄했답니다. 책 나온 지 얼마 안 될 때 샀는데 그새 한국사 베스트셀러 목록에 들어가 놀랐습니다.


제목의 '잡지'는 유득공의 경도잡지(京都雜誌)에서 빌려온 말입니다. 오늘날의 잡지와 한자가 같지만 이 책에선 '잡기(雜記)', 여러 일을 적어 놓은 글이란 뜻으로 쓰였어요. 부제는 '18~19세기 서울 양반의 취향'이나 평민들 이야기도 많답니다. 저는 3장과 4장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1장은 옷 그림과 해설이 자세해서 복직하면 수업할 때 종종 참고하려 합니다. 2장에도 흥미로운 대목이 여럿 보입니다.


기억에 남는 이야기. "삼일유가를 치르려면 돈이 많이 들었다. (중략) 요즘 식으로 하면 가수도, 개그맨도 부르고 댄서들도 동원해야 하니 돈이 만만찮게 들었을 것이 분명하다."(85쪽) 그래서 송만재는 과거에 급제한 아들에게 잔치 대신 광대놀이를 그림 그리듯 묘사한 <관우희(觀優戱)>로 서운한 마음을 달래 줍니다. 가난한 아버지의 한시 50수가 조선 후기 놀이문화를 자세히 정리하는 자료로 남았으니 이런 역설이 또 있을까요.


담배와 투전 부분은 오늘날 인터넷, 스마트폰 중독과 꼭 닮았습니다. 삶이 어렵고 막막할 때 무언가에 더 깊고 진하게 빠져드니까요. 임금부터 하인까지, 심지어 너댓 살 아이도 담뱃대 물던 시절 자신과 가족 모두 금연한 이덕무는 진정 '시대를 뒤서 가는 사람'*이었나 봅니다. 풍성한 그림과 사진, '오늘날로/요즘 식으로 ~이다' 같은 설명 덕분에 200~300년 전 사람들의 일상이 정밀한 생활사로 반짝입니다.


* 정병오 선생님 책 제목.


<마음에 남 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사소한 일에도 이렇듯 깊고도 다양한 사상적 배경이 어우러져 있음을 깨달을 때 비로소 옛것은 온당하게 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106쪽


재물이 없어 원림을 마련하고 꽃나무로 꾸밀 형편이 안 될 때는 상상 속의 정원을 꾸며 글로 남기는 일이 크게 유행했다. 147쪽


요즘 젊은이들은 보지 못했겠지만, 어린 시절 여럿이서 마당에 빙 둘러앉아 뭉친 지푸라기에 기와 조각 가루를 묻혀 놋그릇을 닦던 기억이 생생하다. 푸른 녹이 슬었던 놋그릇이 어느덧 반짝이며 햇볕에 일렁이면 마음마저 밝아졌다. 228쪽


이처럼 백자도 속 아이들은 세상 부모들의 바람대로 고귀한 존재로서 건강하고 용과 범처럼 용감하고 행복하며 천진한 모습을 하고 있다. 329~330쪽

* 백자도(百子圖) : 부귀한 저택의 정원이나 신선들이 사는 선경을 배경으로 어린아이들이 즐겁게 노니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 (3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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