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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한문샘 Oct 07. 2022

이덕무/정민의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2000)

정든 초판, 맑은 위로

읽은 날 : 2001.6.21(목)~8.26(주), 그리고 여러 번

쓴 날 : 2018.7.21()

면수 : 299쪽

* 4년 전 글을 다듬었습니다.



반가운 책이 다시 나왔습니다. 표지 예쁜 재판도 좋지만, 제게는 밑줄 치며 읽은 초판이 더 익숙합니다. 올해 널리 읽힌 문장의 온도와 비교하며 보셔도 괜찮습니다. 사실 이덕무 선귤당농소이목구심서 번역하고 평설한 책은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이 처음입니다. 그 뒤에 책만 보는 바보, 책에 미친 바보가 잇따라 나오면서 이덕무 붐이 일었니다.



임용고사 재수할 때 학교 신문에서 서평 보고 눈이 번쩍! 책장 여니 2000년 4월 6일 목요일에 샀다고 쓰였습니다. 틈틈이 보다 그 다음 해 직장 다니며 삼수할 때 찬찬히 읽었습니다. 스물 한 살에 처음 만난 이덕무를 더 깊이 알아 가면서 뿌듯했고, 저와 같은 나이에 이렇게 맑고 통찰력 있는 글을 썼다는 게 놀라웠답니다.



머리말입니다. "한자의 숲을 걸어나와 우리말로 옮겨 읽으면 전혀 다른 말씀의 세계가 열린다. (중략) 단절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면, 끊어진 양 언덕에 다리를 놓아 소통의 숨통을 터주는 것은 이 시대 학자들이 감당해야 할 또 하나의 몫이다."(7쪽) 지금 봐도 고맙고 살가운 말씀. 그러고 보니 그때 정민 선생님만큼 나이를 먹었습니다. '나는 뭘 했지?' 잠시 돌아봅니다.



이 책에서 가장 아끼는, 읽을 때마다 짠하고 저릿한 글입니다. 이목구심서 한자락. 교육학 학원 다니며 막막하고 불안할 때 책 한쪽에 살짝 썼습니다. "그림이 그려진다. 슬프다. 그러면서도 개결함이 느껴진다... 그는 선비다." 힘든 날마다 읽고 쓰며 마음 다잡던 그의 발자취는 살면서 크고 작은 어려움 만날 때 든든한 위로가 되었습니다.



"아아! 나는 무엇을 할까? 책을 읽을 뿐이다."(233쪽) 옛사람의 목소리에 붙은 평설도 같이 새깁니다. "책 속에는 옛사람들의 육성이 있다. 잠들기 쉬운 내 정신을 깨우는 소리가 있다." 다시 책을 읽어야겠습니다. "추호의 의심 없이 제 생의 전 질량을 바쳐 주인 되는 삶을 살았던 그 선인들의 내면 풍경이 나는 그립다."(23쪽)


<마음에 남 글>


독서가 지적 편식이나 편집적 욕망에 머물지 않고 천하를 읽는 경륜으로 이어지던 그 지적 토대를 나는 선망한다. 23쪽, 정민


얽매임이 없이 툭 터진 마음속에서 예술은 숨을 쉰다. 32쪽, 정민


세계가 커다란 도화지라면 조화옹은 위대한 화가이다. 66쪽, 이덕무


나의 향기, 나의 목소리를 지녀라. 181쪽, 정민


낮에 아무 일도 없을 땐 밝은 하늘을 바라본다. 밤에 아무 일도 없으면 두 눈을 감는다. 밝은 하늘을 바라보노라면 내 마음이 평탄해지고, 두 눈을 꼭 감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201쪽, 이덕무


남의 선함을 드러내는 것은 한없이 좋은 일이다. 209쪽, 이덕무


편지라는 것은 내가 말하고 싶은 바를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내가 하는 말을 듣는 것처럼 하는 것이다. 그 말은 마땅히 분명하고 간결해야 하고, 글자는 마땅히 해서로 또박또박 써야만 한다. 210쪽, 이덕무


스승과 벗은 현재의 경서이고, 경서는 과거의 스승이요 벗이다. 228쪽, 이덕무


군자는 역경과 시련 속에서 더욱 책을 가까이하는 법이다. 242쪽, 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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