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책이 다시 나왔습니다. 표지 예쁜 재판도 좋지만, 제게는 밑줄 치며 읽은 초판이 더 익숙합니다. 올해 널리 읽힌 『문장의 온도』와 비교하며 보셔도 괜찮습니다. 사실 이덕무 『선귤당농소』와 『이목구심서』 번역하고 평설한 책은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이 처음입니다. 그 뒤에 『책만 보는 바보』, 『책에 미친 바보』가 잇따라 나오면서 이덕무 붐이 일었습니다.
임용고사 재수할 때 학교 신문에서 서평 보고 눈이 번쩍! 책장 여니 2000년 4월 6일 목요일에 샀다고 쓰였습니다. 틈틈이 보다 그 다음 해 직장 다니며 삼수할 때 찬찬히 읽었습니다. 스물 한 살에 처음 만난 이덕무를 더 깊이 알아 가면서 뿌듯했고, 저와 같은 나이에 이렇게 맑고 통찰력 있는 글을 썼다는 게 놀라웠답니다.
머리말입니다. "한자의 숲을 걸어나와 우리말로 옮겨 읽으면 전혀 다른 말씀의 세계가 열린다. (중략) 단절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면, 끊어진 양 언덕에 다리를 놓아 소통의 숨통을 터주는 것은 이 시대 학자들이 감당해야 할 또 하나의 몫이다."(7쪽) 지금 봐도 고맙고 살가운 말씀. 그러고 보니 그때 정민 선생님만큼 나이를 먹었습니다. '나는 뭘 했지?' 잠시 돌아봅니다.
이 책에서 가장 아끼는, 읽을 때마다 짠하고 저릿한 글입니다. 『이목구심서』 한자락. 교육학 학원 다니며 막막하고 불안할 때 책 한쪽에 살짝 썼습니다. "그림이 그려진다. 슬프다. 그러면서도 개결함이 느껴진다... 그는 선비다." 힘든 날마다 읽고 쓰며 마음 다잡던 그의 발자취는 살면서 크고 작은 어려움 만날 때 든든한 위로가 되었습니다.
"아아! 나는 무엇을 할까? 책을 읽을 뿐이다."(233쪽) 옛사람의 목소리에 붙은 평설도 같이 새깁니다. "책 속에는 옛사람들의 육성이 있다. 잠들기 쉬운 내 정신을 깨우는 소리가 있다." 다시 책을 읽어야겠습니다. "추호의 의심 없이 제 생의 전 질량을 바쳐 주인 되는 삶을 살았던 그 선인들의 내면 풍경이 나는 그립다."(23쪽)
<마음에 남은 글>
독서가 지적 편식이나 편집적 욕망에 머물지 않고 천하를 읽는 경륜으로 이어지던 그 지적 토대를 나는 선망한다. 23쪽, 정민
얽매임이 없이 툭 터진 마음속에서 예술은 숨을 쉰다. 32쪽, 정민
세계가 커다란 도화지라면 조화옹은 위대한 화가이다. 66쪽, 이덕무
나의 향기, 나의 목소리를 지녀라. 181쪽, 정민
낮에 아무 일도 없을 땐 밝은 하늘을 바라본다. 밤에 아무 일도 없으면 두 눈을 감는다. 밝은 하늘을 바라보노라면 내 마음이 평탄해지고, 두 눈을 꼭 감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201쪽, 이덕무
남의 선함을 드러내는 것은 한없이 좋은 일이다. 209쪽, 이덕무
편지라는 것은 내가 말하고 싶은 바를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내가 하는 말을 듣는 것처럼 하는 것이다. 그 말은 마땅히 분명하고 간결해야 하고, 글자는 마땅히 해서로 또박또박 써야만 한다. 210쪽, 이덕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