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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한문샘 Oct 07. 2022

박지원/김혈조의 『열하일기 1』(2017)

이 일기 대단!

읽은 날 : 2018.5.31(목)~6.27(수)

쓴 날 : 2018.6.27(수)

면수 : 558쪽


#1 뭐 이런 일기가!

     

13년 전 북경에 다녀왔습니다. 부서에서 한 달에 2만 원씩 열 달 모아 비수기에 가장 싼 패키지로 3박 4일. 영하 20~30도에 덜덜 떨며 사진 찍고 메모했으나 여러 일로 제대로 된 여행기는 못 썼어요. 그런 제게 열하일기는 놀라웠습니다. 첫 일기인 6월 24일 신미일 기록이 책으로 21쪽(책 34~54쪽).

     

한글 번역문이고 중간에 사진 자료 들어갔어도 하루 분량으로는 지금까지 본 일기 중 가장 깁니다. 볼펜과 수첩, 노트북과 스마트폰으로 하루 이야기를 이처럼 길게 쓸 수 있을까요. 말잔등에 올라앉아 꼬박꼬박 졸면서 붓으로 풀어낸 메모, 큰 강물 건너고 비바람에 젖어도 고이 간직한 종이쪽이 238년 지난 오늘 마음을 울립니다.

     

#2 고단한 여정, 따뜻한 사람

     

열하일기는 박지원이 1780년 6월 24일 신미일부터 8월 20일 병인일까지 있었던 일을 정리한 기행문입니다. 청나라 건륭제의 70회 생일 축하하러 북경 가니 황제가 휴양지인 열하에 있어 예정에 없던 곳까지 다녀오게 됩니다. 낯선 땅, 여름 더위, 지독한 비바람과 강물결에 열하 가는 길은 왜 그리 험한지!

     

황제 생일에 날짜 맞추느라 밤낮없이 달려가는 길은 고단합니다. 사람은 모두 발이 부르트고 말은 병들고. 그래도 아픈 하인 두 명을 말에 태워 먼저 보내고 걷는 박지원과 수역관(531쪽), 남의 나라 하인까지 자기 수레에 싣고 음식을 권하는 제독(528쪽)에게서 따뜻한 인간미를 읽습니다.


#3 고마운 번역과 개정신판

     

4년 전 열하일기 1 반쯤 읽다 이번에 개정신판으로 다시 보았습니다. 번역도 번역이지만 사진과 도판이 달라진 게 가장 먼저 보였어요. “원작에 충실하면서 완성도 높은 번역서를 만드는 일은 학자에게 주어진 의무일 터이다.”(15쪽) 한국 산문선과는 또 다른 감동으로 한 달 가까이 아껴 읽었습니다.

     

9쇄 찍은 2009년판을 2017년판으로 가다듬는 일은 큰 과제였을 것입니다. 자연경실본에서 친필본과 다른 부분을 걷어내고 오늘날 감각으로 풀어낸 발걸음에 깊이 감사합니다. “그것이 비록 학술연구로 제공될 성격이 아니고 일반 독자의 읽을거리로 제공된다고 하더라도, 역자로서는 독자에게 그리고 원저자인 박지원에게 취해야 할 의무이고 바른 도리일 것이다.”(6쪽)

     

<마음에 남 글>

     

매양 말고삐를 잡고 안장에 앉은 채 졸아 가면서 이리저리 생각을 풀어냈다. 무려 수십만 마디의 말이 가슴 속에 문자로 쓰지 못하는 글자를 쓰고, 허공에는 소리가 없는 문장을 썼으니, 매일 여러 권이나 되었다 14쪽

     

한편 새로운 번역서의 출현은 텍스트를 어떻게 읽고, 거기서 무엇을 찾을 것인가 하는 현재적 물음에 답해야 한다. 15쪽


점포를 둘러보니 모든 것이 단정하고 반듯하게 진열되어 있고, 한 가지 일도 구차하거나 미봉으로 한 법이 없고, 한 가지 물건도 삐뚤고 난잡한 모양이 없다. 비록 소외양간, 돼지우리라도 널찍하고 곧아서 법도가 있지 않은 것이 없고, 장작더미나 거름 구덩이까지도 모두 정밀하고 고와서 마치 그림과 같았다. 76쪽


깨진 기와 조각은 천하 사람들이 버리는 물건이다. 그러나 민간에서 담을 쌓을 때, 어깨 높이 이상은 쪼개진 기왓장을 두 장씩 마주 놓아 물결무늬를 만들고, 네 쪽을 안으로 합하여 동그라미 무늬를 만들며, 네 쪽을 밖으로 등을 대어 붙여 옛날 동전의 구멍 모양을 만든다. 기와 조각들이 서로 맞물려 만들어진 구멍들의 영롱한 빛이 안팎으로 마주 비친다. 깨진 기와 조각을 내버리지 않아, 천하의 문채가 여기에 있게 되었다. 270쪽


나는 지금 한밤중에 이 강물을 건너가니, 이는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탄 말을 믿고, 말은 자기의 발굽을 믿으며, 말발굽은 땅을 믿고서 건넜으니, 그제야 견마를 잡히지 않고 건너는데도 그 효과가 이렇게 나타났다. 525쪽


한 상 그득한 소채 요리와 구이가 모두 잠으로 보이고, 켜 놓은 촛불의 불빛이 무지개처럼 퍼지고 빛살이 꼬리별처럼 사방으로 퍼진다. 532쪽

-> 얼마나 고단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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