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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한문샘 Oct 07. 2022

박지원/김혈조의 『열하일기 2』(2017)

통찰력

읽은 날 : 2018.7.16(월)~8.22(수)

쓴 날 : 2018.8.23(목)

면수 : 544쪽


열하일기 1권이 '대단한 일기'라면 2권은 두뇌 게임입니다. 특히 박지원과 열하 선비들의 필담은 고도의 심리전을 보는 듯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배움을 청하여 마음 놓고 이야기를 터놓도록 유도하고, 겉으로는 잘 모르는 것처럼 가장해서 그들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든다면, 그들의 눈썹 한 번 움직이는 데서도 참과 거짓을 볼 수 있을 것이요, 웃고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실정을 능히 탐지해 낼 수 있을 것이다."(294~295쪽, <심세편>) 그래서일까요. 선비들이 필담하다 종이 찢는 모습이 종종 보입니다. 순간 '아차!' 싶었겠지요.


그러면서도 박지원은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습니다. <경개록>에 열하 태학에서 엿새 동안 만난 사람들 이름과 특별한 기억을 자세히 남기고, 왕민호(곡정)와 윤가전(형산)과는 더 깊이 마음을 주고받지요. 여행에서 낯선 문물과 함께 사람을 만나는 게 큰 기쁨이라면 그는 여행을 제대로 다녀온 셈입니다. 1권에 이어 장복이와 창대를 배려하고 동물의 마음도 헤아리는(86쪽) 부분에서 박지원의 깊이를 봅니다. 2권 읽는 내내 핵심 단어처럼 맴돌았던 '통찰력'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마음에 남 글>


무릇 동물의 성질도 사람과 같아서 피로하면 쉬고 싶고, 답답하면 시원하게 뻗치고 싶으며, 구부리면 펴고 싶고, 가려우면 긁고 싶다. 말이 비록 사람에게 먹이를 얻어먹기는 하지만 때때로 제 스스로 먹이를 구하는 것이 유쾌할 때가 있다. 그러므로 때때로 고삐나 굴레를 풀어서 물이 있는 연못 사이에 내달리게 하여 울적하거나 근심스러운 기분을 마음껏 발산하도록 해 주어야 한다. 이것이 동물의 성질에 순응하고 기분에 맞게 하는 방법이다. 86쪽


밤이 되자 서관에 머물러 있던 역관들이 모두 내 방에 모였다. 술과 안주거리를 약간 준비했으나, 오랜 여행의 뒤끝이라 도통 입맛이 없었다. 여러 사람이 모두 내가 앉아 있는 오른쪽의 보퉁이를 힐끔거리며 속에 뭐가 들었나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내가 창대에게 보따리를 풀어서 자세히 살펴보게 했다. 특별한 물건은 없고 단지 지니고 갔던 붓과 벼루뿐이었으며, 두툼하게 보였던 것은 모두 필담을 하느라 갈겨 쓴 초고와 유람하며 적은 일기였다. 그제야 사람들은 궁금증이 풀렸다는 듯 웃으며,

"어쩐지 이상하다고 생각했네. 갈 때는 보따리가 없더니, 돌아올 때는 보따리가 너무 커졌기에 말이야."

라고 하는데 장복도 서운한지 머쓱한 표정으로 창대에게 말한다.

"특별 상금 은자는 어디 있는 거야?" 153쪽

- 이 부분에 순간 뭉클!


풍속은 사방이 각기 다르니 이른바 백 리마다 풍속이 다르고, 천 리마다 습속이 다르다는 것이 이것입니다. 그러므로 강력한 법으로도 미칠 수 없고, 말로도 깨우칠 수 없는 경우에는 오직 음악만이 귀신같은 기능과 오묘한 작용을 펼칠 수 있습니다. 마치 바람처럼 움직이고 햇살처럼 비추어 알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중에 고무되는 것과 같은 작용을 합니다. 348쪽, <망양록>


말안장에 있을 때는 피로가 누적되어 붓을 댈 여가가 없었으므로, 기이한 생각들이 하룻밤을 자고 나면 군자는 원숭이와 학으로 변하고 소인은 벌레와 모래로 변한다는 말처럼 이리저리 생각이 바뀌긴 했지만, 이튿날 다시 가까운 경치를 쳐다보면 뜻밖에 기이한 봉우리가 나타나듯 새로운 생각이 샘솟고, 돛을 따라 새로운 세계가 수시로 열리는 것처럼, 정말 긴 여정에 훌륭한 길동무가 되고 멀리 유람하는 길에 지극한 즐거움이 되었다. 490쪽, <곡정필담>


소리와 빛깔이란 내 마음 밖에서 생기는 바깥 사물이다. 이 바깥 사물이 항상 사람의 귀와 눈에 탈을 만들어 사람으로 하여금 이렇게 올바르게 보고 듣지 못하게 만든다. 더구나 한세상 인생살이를 하면서 겪는 그 험하고 위태함은 강물보다 훨씬 심하여, 보고 듣는 것이 문득문득 병폐를 만듦에 있어서랴. 내가 장차 연암협 산골짝으로 돌아가 다시 앞 시냇물 소리를 들으면서 이를 징험해 보리라. 또한 교묘한 방법으로 자기만 유익하게 하여 자신의 영달을 꾀하며, 자신의 총명만을 믿는 사람에게 이것으로 경고하노라. 506쪽, <일야구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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