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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한문샘 Oct 07. 2022

박수밀의 『연암 박지원의 글 짓는 법』(2013)

따뜻한 도끼

읽은 날 : 2018.5.6(주)~7.15(주)

쓴 날 : 2018.7.15(주)

면수 : 303쪽

* 4년 전 글을 다듬었습니다.


연암은 낯선 길입니다. 읽을 때마다 새롭고 어렵습니다. 그간 이덕무와 정약용 글을 주로 읽다 올해 들어 틈틈이 박지원 작품을 봅니다. 그런 제게 연암 박지원의 글 짓는 법은 따뜻한 도끼 같은 책입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방향을 잡아야 할지 얼떨떨했으나, 6월 내내 열하일기 1 읽고 다시 만나니 잘 몰랐던 부분이 하나하나 보였습니다.


책 제목은 '글 짓는 법'이지만 당장 써먹기 좋은 기교보다 연암 글의 특징과 글쓰기의 본질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실용적인 글쓰기 책을 원하는 독자라면 '이게 뭐야?' 할 수 있겠습니다. 제목이 연암의 글쓰기라면 더 좋았겠다 싶었는데 <범의 꾸짖음>을 읽고서야 왜 '쓰는' 대신 '짓는'이었는지 알았습니다. 연암에게 글쓰기는 아주 촘촘하고 독창적인 작품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 정점에 열하일기가 있습니다.


읽는 내내 모르는 게 많음을 절실히 깨달 종종 아팠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내면의 부족함을 깨는 도끼입니다. 하지만 냉철하고 명료한 글에 따스한 시선이 묻어나 끝까지 찬찬히 읽을 수 있었습니다. "공부가 나를 덜 외롭게 하고 세상을 더 따뜻하게 했으면 좋겠다."(저자의 말) 지금 읽고 쓰며 정리하는 공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에 남 글>


본래부터 쓸모없는 존재는 없다고 생각한다. 시각을 바꾸면 똥거름과 기와조각도 가장 요긴할 때가 있다. 공부도 그렇고, 살아가는 일도 그렇고 관점이 중요하다고 느끼고 있다. 고전의 재료들을 어떻게 접근하면 지금에 의미가 되게 할까를 고민한다. 기왕이면 새롭게 찾아낸 진실이 성찰과 새로운 자각을 이끌어냈으면 싶다. 공부가 나를 덜 외롭게 하고 세상을 더 따뜻하게 했으면 좋겠다. 연암의 합리적인 이성, 이덕무의 온유한 성품, 박제가의 뜨거운 이상을 품으려 한다. 책날개, 저자의 말


연암은 '그때'의 구조 속에 구속되어 있으면서도 그 구조를 성찰하고 구조 너머를 바라본다. 그는 모든 인간이 '그때 저기'를 향해 갈 때 '지금 이곳'을 이야기하자고 한다. 16쪽


요컨대 연암은 사물과 사물 사이에 주목함으로써 기존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주변에 주목할 것을 요청했다. 그리하여 쓸모없는 것, 버림받은 존재도 조건에 따라 모두 소중한 개체가 될 수 있으며 다양한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생명체임을 보여 주고자 했다. 60쪽


편안한 상태에서는 참된 문학이 나올 수 없다. 수많은 명저는 고통과 시련을 겪은 인간이 그 좌절한 마음을 창조적 에너지로 승화시켰기에 탄생할 수 있었다. 94쪽


연암은 황금대가 단순히 역사적 공간이 아니라 고도의 정치성과 이데올로기가 숨어 있는 곳임을 꿰뚫어보았다. 우리들 또한 이와 같은 연암의 통찰력을 흡수해 고전의 공간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고 공간에 담긴 의미와 자취를 다시 찾아내 가야 하리라 본다. 219쪽


연암은 사실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 작가다. 하지만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때로는 허구의 언어, 우언의 언어를 적절하게 활용했다. 연암은 진실을 보여 주기 위해 '사실'에 윤색을 가하거나 의도적으로 허구를 삽입하기도 했다. 247쪽


오행상생설에 의하면 나무는 불을 낳고, 불은 흙을 낳는다. 곧 나무는 불의 어미가 되고 불은 나무의 자식이 된다. 그러나 그(연암)에게 오행상생은 어미가 자식을 낳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힘입어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과 저것이 서로 비추어 주는, 서로가 주고받는 공생의 관계다. 물질과 세계를 바라보는 연암의 세계관이 드러난다. 모든 존재는 서로를 의지하며 힘입어 살아간다는 것이다. 275쪽


하늘이 명령한 바로 본다면 범이든 사람이든 만물의 하나일 뿐이다. 모든 생명체는 함께 길러지는 것이며 서로 어그러져서는 안 된다. 2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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