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1 때 EBS 교양한문에 푹 빠졌습니다. 김학주 선생님이 강의하셨는데 교재가 없어, 비디오로 녹화하고 다시 들으며 본문과 해설을 공책에 옮겼습니다. 다음 해 강사가 이명학 선생님으로 바뀌면서 처음으로 교재가 나왔습니다. 문우당서점에서 따끈따끈한 책 보고 얼마나 반갑던지! 여러 번 이사하다 공책과 교재가 없어져 아쉽지만, 3년 동안 차곡차곡 새긴 글은 학교 한문 교과서와 함께 십대 후반을 밝히는 빛이 되었습니다.
『인문학적 상상력을 위한 한문강의』읽다 어린 날 교양한문이 떠올랐습니다. 동양고전으로 공생의 길을 찾는 방향성이 좋아 열흘간 아껴 읽었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시대일수록 문학, 역사, 철학을 아우르는 동아시아의 한문 고전에 대한 아날로그식 독서가 필요하다."(5쪽) 순간 급 공감! "사회적 갈등과 생태적 위기를 겪고 있는 현대인에게 새로운 출구를 찾을 수 있는 인문학적 상상력을 회복시켜 줄 수 있을 것이다."(5쪽)'인문학적 상상력'에 밑줄 쫙.
『시경』, 『서경』부터 20세기 장일순의 한말씀까지 옛글 250편 찾아 주제에 맞게 풀어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비결이 궁금했는데 머리말 한켠에 답이 있었습니다. "전공인 한문학 분야는 물론, 동서고금의 지혜가 담긴 책들을 읽으며 감동과 교훈을 준 내용을 부지런히 메모해 왔다."(5쪽) 오래된 글 읽고 쓰며 정리하는 나날은 좋아하는 일이면서 꿈꾸는 발걸음입니다. 그 길 먼저 걷는 선생님 덕분에 아는 글은 달리 보고 낯선 글은 마음 열며 읽었습니다.
"깨끗하게 살면서도 남을 부드럽게 포용할 줄 알고, 남을 사랑하면서도 원칙에 있어서는 단호한 결단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경지"(22쪽) 이렇게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글과 삶을 아우르려 애쓴 선현들의 마음이 읽는 내내 맑은 물, 따스한 햇빛 되어 밀려왔습니다. "한 선비가 제대로 글을 읽으면 그 혜택이 사해(四海)에 미치고, 그 공은 만세에 드리울 수 있다."(36쪽, 박지원) 잘 읽고 찬찬히 쓰며 깊고 넓게 배우겠습니다. 무엇보다 공부한 대로 살아야겠습니다.
<마음에 남은 글>
성공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유명함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반면, 정의로움은 영원한 진리의 반석이 된다. 29쪽, 스코트 니어링
다른 사람을 아는 자는 지혜롭고, 자기를 아는 자는 현명하다. 41쪽, 노자
당신의 길을 함께 걸으면 결국 우리들의 길이 될 것이다. 77쪽
선비가 마음의 문을 열고 민중의 소리를 들으며 실천적 학문을 탐구하고, 자기 성찰을 통해 높은 정신을 유지해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해 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102쪽
국가는 모든 국민들을 위한 좋은 집이 되어야 한다. 105쪽, 신필균
산처럼 우뚝하고 못처럼 깊으면 / 봄날의 꽃처럼 환히 빛나리라. 200쪽, 조식
연대는 아픔과 기쁨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과 손을 잡고 사회적인 선과 미덕을 실현하는 행위이다. 208쪽
강물이 어디 바위나 언덕과 정면 대결하는 것을 보았는가? 바위를 만나면 감싸 안아 주고 웅덩이는 채워 주며 언덕은 휘돌아 흘러간다. 227쪽
빈 배는 욕심을 버리고 소요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을 상징하고 있다. 어떤 특정한 목적지나 인위적인 조작 없이 물결치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천명에 순응해서 살아가는 자유인의 모습이다. 2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