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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한문샘 Oct 08. 2022

『한국 산문선 7 : 코끼리 보고서』(2017)

옛글에 빠져들다

읽은 날 : 2018.1.17(수)~2.5(월)

쓴 날 : 2018.2.6(화)

면수 : 476쪽

* 4년 전 글을 다듬었습니다.


천천히 행복하게 읽었습니다. 낯익은 글 많으나 처음 보는 작가와 작품도 여럿. 소품문이 발달하면서 진솔한 감정을 세밀하게 풀어내는 글이 늘었고, 한편으론 정조처럼 보수적인 문체와 사상을 고수하는 움직임이 굵직합니다. <발해사 저술의 의의>나 <재부론>처럼 짧은 글에 독특한 논리와 강렬한 주제를 담은 논설문도 눈에 띕니다.


7권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인간에 대한 존중'입니다. <잃어버린 아내의 여사서>와 <남편 김철근 묘지명>은 남편이 아내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보내는 깊고 은은한 사랑입니다. 이언진이 아우에게 띄운 글은 고흐의 편지와 놀랍도록 닮았습니다. <예덕선생전>과 <방아 찧는 시인 이명배>처럼 신분을 뛰어넘어 마음을 나누고 <만덕전>과 <침은 조광일>처럼 숨은 영웅을 글로 전하는 붓은 아름답습니다. <홍덕보 묘지명>과 <백탑에서의 맑은 인연>에 담긴 우정은 얼마나 고귀한가! 읽는 내내 옛글 속에 빠져듭니다.


옮겨 쓰고 싶은 글이 많아 한곳에 모으니 제법 많습니다. 오래 읽고 깊이 새겨 마음 한자락에 고운 향기를 남기고 싶습니다.


<마음에 남 글>


제가 침을 잡고 사람들 사이에 노닌 것이 십여 년입니다. 어떤 날은 하루에 몇 사람을 살리고 어떤 달은 십여 명을 살렸습니다. 온전히 살린 사람을 계산해 보면 수백 명에서 천 명 아래로는 내려가지 않을 것입니다. 제 나이 지금 사십여 세이니,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이렇게 한다면 만 명을 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살린 사람이 만 명에 이르면 제 할 일도 끝나겠지요. 78쪽, 홍양호


천하의 기이한 선비를 얻어 사귀는 것은 하나의 통쾌한 일이다. 뜻을 얻어 이 사람과 더불어 함께하는 것도 하나의 통쾌한 일이거늘, 설령 뜻을 얻지 못한다 해도 이 사람과 더불어 함께한다면 그것 역시 하나의 통쾌한 일이다. 113쪽, 이규상


훗날 글쓴이(이규상)는 문과에 급제하지 못하고 능참봉을 역임했지만 벗(조경)은 문과에 급제한 뒤 승진을 거듭해 우의정까지 올랐다. 그 큰 간격에도 우정은 변함이 없었다. 115쪽


저 훗날의 환난과 백 년 뒤의 큰 계책은 깊이 걱정하고 원대하게 생각하며 밝은 지혜와 함께 독자적 견해를 갖춘 자가 아니라면 대처할 능력이 없다. 138쪽, 이종휘


자연으로부터 나온 나무꾼의 메나리나 농부의 농부가가, 말은 설령 예스러워도 천기를 잃어버린 사대부의 수정하고 퇴고하며 완성한 작품보다 오히려 낫다. 148쪽, 홍대용


나는 노자보다 벼슬이 높았고, 도연명보다 부유하며, 백낙천보다 장수하였다. 태평성대에 태어나 늙었으니 두보보다 낫고, 처음부터 끝까지 임금의 은혜를 누렸으니 이태백보다 낫다. 그러니 너무도 분에 넘치지 않은가! 이야말로 선조의 음덕이며 나라의 은혜다. 나는 요행으로 얻었으니 경계하고 두려워하여 방자하지 않도록 해야 하리라! 그래서 침실 벽에 써서 자손에 행운이 깃들기를 바란다. 166쪽, 성대중


"가장 즐겁게 노는 이는 어린아이이다. 그러므로 어린아이의 장난은 활기찬 천성이다. 가장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이는 처녀이다. 그러므로 처녀가 숨는 행동은 순진한 진실이다. 문장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 가장 잘 장난치고 놀며 가장 부끄러움을 많이 타며 숨는 이가 또한 나보다 심한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그 원고에 어린아이와 처녀라는 이름을 붙인다." (중략)

"그렇다면 어린아이와 처녀가 대장부가 되고 부인이 될 날이 없단 말인가?"

나는 드디어 미소를 짓고 이렇게 대꾸하였다.

"비록 대장부가 되고 부인이 된다 해도 천성에서 우러나온 활기참과 진실함에서 배어 나온 순진함은 머리가 허옇게 세어도 여전히 똑같을 것일세." 265~266쪽, 이덕무


그 무렵 형암 이덕무의 사립문이 그(박지원의 집) 북쪽에 마주 서 있고, 낙서 이서구의 사랑이 그 서편에 솟아 있었으며, 수십 걸음 떨어진 곳에 관재 서상수의 서재가 놓여 있었다. 또 거기서 꺾어져 북동편에는 유금, 유득공의 집이 있었다. 312쪽, 박제가


도를 담은 문장이 가장 높다. 하지만 그보다 아래에 있는 문장이라도 반드시 학식이 속에 쌓여야 아름다움이 밖으로 드러난다. 336쪽, 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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