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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한문샘 Oct 08. 2022

『한국 산문선 8 : 책과 자연』(2017)

그늘진 나날의 글쓰기

읽은 날 : 2018.4.2(월)~4.21(토)

쓴 날 : 2018.4.21(토)

면수 : 435쪽


8권에는 유배객의 글이 많습니다. 서기수 5년, 김려 10년, 정약용 18년, 이학규 24년. "하지만 유배 생활 중에도 주목할 만한 시문을 지으며 붓을 꺾지 않았다."(230쪽) 김려의 이야기는 다른 작가들의 삶이기도 합니다. 그들에게 글쓰기는 언제 풀려날지 모르는 고단하고 막막한 나날 앞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간직하는 힘이었습니다.


"봄에도 풀이 자라지 않고 가을에도 수확할 쌀이 없으며, 추워도 솜옷이 없고 병에 걸려도 약이 없다. 하지만 노인은 제 집처럼 살면서 거처하는 방을 '목석거(木石居)'라 이름 붙이고 책을 읽으며 여유롭게 보냈다."(319~320쪽, 서기수) 그러다 보면 가끔 뜻밖의 선물이 찾아옵니다. "그동안 듣지 못한 것을 듣고 보지 못한 것을 보는 즐거움"(229쪽, 김려).


한켠에는 또다른 그늘이 있습니다. 서얼인 성해응과 유본학, 문체반정으로 벼슬길이 막힌 이옥, 숙부의 옥사로 18년간 벼슬에서 물러난 서유구. 그들의 글을 자세히 보면 따듯하고 애잔합니다. 백동수, 김광택, 송귀뚜라미, 빙허각 이씨처럼 눈물겹고 가열차게 살았으나 잊힐 뻔한 사람들이 붓끝으로 새록새록 살아납니다.


"옛사람은 만나 볼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책을 읽다가 때때로 옛사람을 만나곤 한다. (중략) 평범한 사건이나 말이라도 그의 지향을 넉넉히 표현하는 곳에 있다. 그러면 천 년 뒤에라도 황홀하게 얼굴을 마주 대하고 직접 이야기를 나누는 듯하다."(235쪽, 이면백) 쓰고 또 쓰던 옛사람의 발자취가 저를 깨웁니다. 제가 옛글을 읽고 공부하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마음에 남 글>


말없이 이뤄지는 가르침은 북채로 북을 치는 속도보다 빠르고, 남몰래 이끄는 교화는 모래밭에 빗물이 스미는 것보다 잘 스며든다. 88쪽, 신작


올해 임오년(1822년, 순조 22년)을 다시 만나니 세상에서 말하는 회갑이다. 마치 다시 태어난 느낌이다. 마침내 쓸데없는 일은 깨끗하게 버리고 밤낮으로 성찰하여 하늘이 부여한 본성을 회복하려 한다. 154쪽, 정약용


내가 책을 읽고 도를 배우는 것은 천하 백성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이다. 161쪽, 범중엄 (정약용의 <홍역을 치료하는 책>에서 인용)


어린 시절 놀던 곳을 철들어서 다시 찾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요, 궁핍한 시절 지내던 곳을 뜻을 성취한 뒤에 다시 찾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요, 외로이 홀로 걷던 곳을 반가운 손님 좋은 벗과 함께 다시 찾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다. 164쪽, 정약용


평소 산수 유람을 즐기던 서기수에게 갑산 유배는 큰 시련이긴 했지만 오랜 숙원인 백두산 등반을 실현시켜 준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3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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