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전에 망설였습니다. 작년 베스트셀러와 비슷한 제목에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 쏙 닮은 구성. 뽑은 글이 정민 선생님 책처럼 『선귤당농소』와 『이목구심서』인 것도 마음에 걸립니다. 다행히 책은 예상보다 깊고 따뜻했습니다. 원문은 낯익은 글이 많아 평설 중심으로 찬찬히 보았습니다.
『조선 최고의 문장 이덕무를 읽다』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요즘 언어로 세밀하게 풀어내신 작가님께 고마웠습니다. 평설 중 제 생각과 다른 부분도있지만, 무엇보다 왜 2018년에 이덕무를 읽는지 차근차근 정리하면서 뿌듯했습니다.
#2 숙제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꿈꾸던 학과에 가면 다 얻은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스무 살은 어쩌면 사춘기보다 더 깊게 방황하고 회의했던 나날이었습니다. 연애, 임용, 결혼, 출산이란 여러 산을 넘으며 누구에게나 숙제가 있음을 배웁니다. 제가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과목과 내용이 다를 뿐.
이덕무의 평생 숙제는 서얼과 가난, 자주 아픈 몸입니다. 서자라 가난했고 가난해서 더 아팠습니다. 어머니와 첫딸을 먼저 보낸 남모를 눈물도 있습니다. 그렇게 어려울 때 읽고 쓰며 스스로를 다독인 발자취가 고맙습니다. 무거운 숙제를 차근차근 풀어내던 그는 지금도 종종 저를 깨웁니다.
#3 나에게 이덕무란
책에는 없지만 이덕무의 편지에 오래 굶다 『맹자』 팔아 쌀 사먹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절친 유득공도 『좌씨전』 팔아 술 한 잔 크게 삽니다. "이 어찌 맹자가 밥 지어 내게 먹여 주고 좌씨가 술 따라 내게 권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소." 저는 이 구절을 그냥 읽지 못합니다.
스물세 살, 임용고사 직전교내 학술상에 졸업논문을 냈습니다. 『관독일기』로 썼다 당선작 없는 가작. 이덕무가 10만 원 준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20대 초반 이덕무를 만나고부터 여러 일로 마음 앓을 때 그의 글을 읽으면 다시 일어설 힘을 얻습니다. 저에게 이덕무는 단순한 작가 이상입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아주 특별한 무엇.
<마음에 남은 글>
* 매우 많아 몇 가지만 올립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기쁘고 즐거운 때보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날을 더 많이 만난다. 그때마다 우리를 위로하는 것이 바로 소소한 일상이다. 5쪽, 한정주
항상 나의 뜻을 삼월의 복숭아꽃 물결처럼 하면 물고기의 활력과 새들의 자연스러움이 모나지 않은 온화한 마음을 갖도록 도와줄 것이다. 14쪽, 이덕무
다른 향기가 더 좋다고 나의 향기를 지우고, 다른 색깔이 더 빛난다고 나의 색깔을 없애려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행동은 없다. 37~38쪽, 한정주
우리는 하나의 기억이 또 다른 풍경과 우연히 만날 때 뜻밖의 깨달음을 얻곤 한다. 40쪽, 한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