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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한문샘 Oct 09. 2022

안대회의 『조선의 명문장가들』(2016)

옛사람을 만나다

읽은 날 : 2017.8.19(토)~9.8(금)

쓴 날 : 2017.9.9(토)

면수 : 827쪽

* 5년 전 글을 다듬었습니다.


"20세기 이전에 창작된 고전 산문 가운데 많은 작품은 오랜 기간 독자를 잃고 검은 먹물을 뒤집어쓴 채 한지 속에 갇혀 있었다. (중략) 그 작품들은 한문으로 쓰이고 현대인의 시각에서 내용이 조금 낡아 보이더라도, 거기에는 현대인의 안목과 기준으로 함부로 재단할 수 없는 높고 멋진 산문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4쪽)


습니다. 그 맛에 한문 읽고 공부했지. 큰 아이들 학교 가고 막내 잘 때 틈틈이 보았습니다. 젊은 이덕무와 정약용의 여행기는 경쾌하고 유본학의 <검술가 김광택>은 따듯합니다. "그때 달빛은 길에 가득하고 꽃나무는 하늘까지 닿았으며, 드문 별빛이 쏟아졌습니다."(312쪽) 박제가가 이렇게 서정적인 사람이었다니!


책 속의 사람들은 건강합다. 남이 알아 주지 않아도 당당하고, 뜻밖의 역경은 글 쓰며 달랩니다.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유본학은 서얼, 강이천, 장혼은 장애인. 허균, 정약용, 김려, 이학규는 유배객입니다. 다른 작가들도 대부분 가난하거나 외로웠습니다. 이서구와 남공철이 그나마 여유지만, 자세히 보면 쓸쓸함이 묻어납니다.


마음 맞는 글 읽고 공책에 옮겨 쓰면 보물을 차곡차곡 쌓는 듯합니다. 읽고 쓰는 동안에는 자잘한 염려와 부질없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번역문과 한문 원문은 또 다릅다. 그 때 그 사람들을 눈 앞에서 보는 듯! 이번에는 <검술가 김광택>과 <섭구충 이야기>가 오래 남습니다. 다음에는 어떠할지.


* 이 책의 요약본 『문장의 품격』(안대회, 휴머니스트, 2016.)도 좋습니다.


<마음에 남 글>


제가 지닌 보물을 스스로 소중히 여기면 그뿐이니 인정해 주기를 기다리지 않지요. 38~39쪽, 허균


하루가 쌓여 열흘이 되고 한 달이 되고 한 계절이 되고 한 해가 된다. 77쪽, 이용휴


아무리 작은 기예일지라도 다른 모든 것을 잊고서 매달려야만 이루어진다. 119쪽, 박지원


이덕무는 10대의 습작기를 거쳐 20대에 벌써 자기 고유의 빛깔과 색채를 지닌 독특한 문장을 창작해냈다. 183쪽, 안대회


마음에 조바심과 망령됨을 갖지 말자!

오래 지나면 꽃이 피리라. 192쪽, 이덕무


사통팔달의 큰길 옆에도 한가로움은 있다. 194쪽, 이덕무


말의 외양을 무시하여 천리마를 얻은 구방고처럼

옛것과 지금 것을 저울질하는 그의 눈동자는 크고도 진실하다. 224쪽, 이덕무


큰 바둑판을 앞에 두고 호기롭게 흑백의 돌을 던지는 듯

큰 연희 무대 위에서 헐렁한 옷을 입은 꼭두각시인 듯

조급해하지도 않고 화도 내지 않으며 하늘을 따라서 즐기리라. 225쪽, 이덕무


세상에 독서하는 사람은 있지만 독서하는 장소란 없다. 236쪽, 이가환


아들을 사랑하는 부모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는 법이다. 236쪽, 이가환


늘 스스로 깨어 있어 오묘함을 잃지 말자. 290쪽, 박제가


사람 사이에는 한 번 보아도 바로 알아주는 사람이 있고, 크게 다른데도 그럴수록 더 뜻이 맞는 사람이 있으며, 한 가지 일에도 평생토록 잊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310쪽, 박제가


매우 긴 편의 글인데도 따분함을 전혀 느낄 수 없을 만큼 변화와 기복이 있다. 318쪽, 안대회


헛된 명예는 사람을 감동시키지 못하고, 뛰어난 재사는 많은 사람과 사귀지 않는다. 326쪽, 이서구


자신을 수양하고 덕을 쌓음으로써 저절로 오는 벗을 기다리는 것이 성인의 길이요, 문을 닫아걸고 바깥 출입을 삼감으로써 당세에 이름 날리기를 구하지 않는 것이 달관한 선비의 뜻이다. 326~327쪽, 이서구


저 새와 곤충, 풀과 나무는 천지의 문장이요, 문장이란 인간을 장식하는 것입니다. 335쪽, 이서구


내게 일어난 일과 내 삶의 소중함은 저 상고적 역사와도, 세상의 큰 사건과도 견줄 상대가 아니다. 나에게 날마다 새로 벌어지는 일이 내게는 가장 소중하다. 그래서 일기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365쪽, 안대회


높은 산과 흐르는 물은 선생의 마음이요, 많은 골짜기에 이는 솔바람 소리는 선생의 가야금 소리일세. 438쪽, 남공철


그(김려)의 시와 산문에 일관하는 주제는 버려지고 상처받은 인생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다. 459쪽


노둔한 말이나 준마나 할 것 없이 말은 사람이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 (중략) 달리는 것은 말의 본성이다. 말 가운데 제 욕심만 도모하는 말이 제일 좋지 않은 종류인데, 지혜로운 자는 그 말을 제압하여 고삐를 잡아 제멋대로 날뛰지 못하게 한다. 나는 오로지 엄하게 말을 부리므로 말이 제 욕심을 부릴 수 없을 뿐이다. 498~499쪽, 강이천 (말 잘 다루는 종의 말을 인용함)


(유본학은) 윤기 흐르는 문체를 보여 주지는 못했으나, 고담하고 평이한 문체 속에 따뜻한 인간미를 묘사하는 데 장기를 보였다. 553쪽


달이 물을 만나면 더욱 맑아지고, 물이 바람을 만나면 더욱 일렁거린다. 604쪽, 이학규


배움이란 나를 위한 것이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다. 알아 주고 알아 주지 않음은 남에게 달려 있고, 부끄럽고 부끄럽지 않음은 내게 달려 있다. 따라서 나는 나를 닦아 아무 부끄럼 없기를 바랄 뿐이다. 629쪽, 남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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