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정약용)는 끝없이 메모하고 쉬지 않고 글을 썼다. 이 가운데 그가 그때그때 자식과 제자, 그리고 가까운 벗에게 써준 증언(贈言)이 있다. (중략) 아끼는 제자라면 차별 없이 써주었고,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써주지는 않았다."(6쪽)
<250통의 엽서>를 읽었습니다. 수능 직전 교과 담임반 제자 250명에게 하나하나 응원 엽서 써 주신, 영훈고 최관하 선생님 이야기입니다. 첫 담임반 아이들과 각 반 한문부장 주려고 크리스마스 직전에 카드 50통을 샀습니다. 결과는? 못 썼습니다. 그 카드 아직 집에 있습니다.
그런 제게 다산의 증언첩은 놀랍고 존경스럽습니다. 어둡고 불안한 유배지에서 한 자 한 자 쓴 편지는 한밤중의 별빛을 닮았습니다. 그 글 받은 사람들은 얼마나 감사하고 든든했을까요. 칠흑 같은 막막함에 묻히기보다 스스로 별이 된 사람, 다산의 마음이 여기 있습니다.
제가 아는 다산은 냉철하고 면밀합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차가우나 따듯하고, 서릿발 같으면서도 부드럽습니다. 그 마음 아는 사람은 스승의 글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심지어 10대 초반에 받은 증언을 71세에 외워 쓰고 그걸 후손이 옮겨 적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비슷했겠지요.
3주 동안 아껴 읽었습니다. 큰 산 하나 넘어갑니다. 마지막 말씀이 뭉클해 붙입니다. "그토록 간절하고 애틋한 정성으로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써준 그 고맙고 귀한 글들이 2백 년 가까운 세월 동안 묻혀 그 긴 적막의 세월을 견뎌 남았다."(626쪽)
덧 : 귀한 글과 발자취를 번역하고 풀어 주신 정민 선생님께도 감사를! 조금 더 편하게 읽으실 분께는 요약본 『다산의 제자 교육법』을 추천합니다.
<마음에 남은 글>
(다산은 제자 황상에게)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생업에 종사해야 하지만, 텃밭에서 푸르게 올라오는 여린 채소 같은 마음을 지닐 것을 주문했다. 뜨겁고 화끈한 삶보다 잔잔하고 해맑게 흘러가는 삶을 기뻐하라고 도닥였다. 66~67쪽
글에는 글쓴이의 생각이 그대로 담긴다. 따라서 글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 우리는 옛글을 읽으면서 그 작가의 시대와 만나고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가 있다. 130쪽
이번에 읽은 여섯 단락의 증언은 귤동의 다산초당 시절 윤씨 집안 제자들에게 써준 글이다. 당시 10대 초반이었던 윤종민은 스승의 글을 읽고 또 읽어 아예 통째로 외워버렸다. 그리고 그가 71세가 되었을 때, 어느 날 문득 자신의 기억 속에 담겨 있던 스승의 글을 불러내 종이에 옮겨 적었다. 그가 어릴 때 읽어 외웠던 다산의 친필은 현재 찾을 수 없다. 윤종민이 1868년 5월에 옮겨 쓴 그 친필도 이제는 없다. 낙천 윤재찬 옹이 강진 귤동에 남아 전하던 각종 다산 관련 기록들을 하나하나 모아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을 쏟아 베껴서 『귤림문원』이란 책자로 엮을 때 다시 옮겨 적어 오늘 우리가 이 글을 읽는다. 136~137쪽
제가의 시문을 반복해서 익히되, 단점은 버리고 장점을 취해, 같지만 결코 같지 않고, 익숙하면서도 전혀 새로운 자기만의 목소리를 가져야 한다. 332쪽
어린이의 교육은 문심혜두를 열어주는 데 그 목표를 두어야 한다고 했다. 문심은 글 속에 아로새겨진 지혜를, 혜두는 슬기 구멍을 뜻한다. 글을 하나하나 배워 익힐 때마다 지혜의 곳간에 차곡차곡 보화가 쌓여서 슬기 구멍이 활짝 열린다. 그 귀한 보석들이 햇빛을 받아 일제히 반짝반짝 빛나면 얼마나 눈부실까? 432쪽
다산은 어린이들이 공부에 몰입할 수 있는 시기를 8세부터 16세까지로 꼽았다. 그중에서도 아직 어려 뭘 모르는 8세부터 11세까지와 사춘기에 접어드는 15~16세를 뺀 12세부터 14세까지의 3년간이 공부의 바탕을 이루는 금쪽같은 시간임을 논한 대목이 정채롭다. 오늘로 치면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의 시간이다. 43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