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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한문샘 Oct 09. 2022

백승종의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2011)

공부법을 배우다

읽은 날 : 2017.6.30(금)~8.18(금)

쓴 날 : 2017.8.19(토)

면수 : 407쪽

* 5년 전 글을 다듬었습니다.


"1797년, 국왕 정조는 강이천뿐만 아니라 그와 유사한 불특정 다수의 조선 선비들을 상대로 '문화투쟁'을 전개했다. 나는 이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고, 그래서 강이천을 "키워보기"로 작정했다."(7쪽)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학술서지만 추리소설 읽는 듯합니다. 쉬운 책은 아닙니다. 독자의 성향에 따라 반응이 엇갈리겠습니다. 에게는 괜찮았습니다. 특히 머리말을 자세히 읽었습니다.


"논문을 준비하면서 연구노트를 작성했었다. 날마다 그날 연구한 내용을 에세이를 쓰듯 글로 정리한 것이다. 20여 년 전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할 때도 연구노트를 쓴 적이 있었다. 그 시절의 연구노트는 하루의 작업 분량을 꼬박꼬박 적어 두고 그날 연구 주제와 관련해 떠오른 단상을 단편적으로 기록한 것이었다. 그렇게 여러 권의 연구노트를 만들면서, 주제에 관한 내 생각은 영글어갔다. 그 연구노트를 십분의 일로 대폭 줄여 쓴 것이 박사학위 논문이었다."(13~14쪽)

이 부분에 순간 소름! 조금 더 찬찬히 읽었습니다.

   

"그날그날의 연구를 집약할 수 있는 임상보고서, 중요 자료의 번역과 사료 비판, 2차 자료의 요약과 비평을 꼬박꼬박 적어 두었다. 머릿속을 번개처럼 스쳐가는 제법 중요한 생각이 있으면 그것도 써 두었다. <강이천> 연구가 일단락되고 보니 그동안 쓴 연구노트가 75개 항목에 걸쳐, 2백자 원고지로 1천 6백 매를 넘었다."(14쪽)

"내 연구노트에는 하나의 자그마한 연구 주제를 다루는 동안 역사가에게 떠오르기 마련인 여러 가지 고민의 흔적이 기록되어 있다"(14쪽)

"이 연구노트는 한 권의 역사책이 어떤 과정을 통해 쓰이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가 될지도 모르겠다."(14쪽)


본문만 379쪽, 참고문헌까지 더하면 400쪽 넘는 책의 시작은 연구노트입니다. 날마다 차곡차곡 쌓아 올린 공부의 발자취. 그러면 이 방대한 공부의 목적과 방향성은 무엇일까요.

"'강이천'이라는 연구 주제에 매달려 있을 때 나는 역사란 무엇인가를 여러 차례 생각해 보았다. 우리의 전통 속에서 역사는 에피소드로 둔갑될 때가 많았다. 서사가 결핍되었다. 그래서 나는 중층적인 서사를 써 보자는 생각을 많이 했다. 사람의 얼굴이 보이고 사람의 냄새가 풍겨나는 서사, 역사 속 인물들의 망설임과 혼란과 고독함이 가슴으로 전달되는 역사, 역사적 주인공들이 추구한 삶의 전략이 파헤쳐지는 역사를 쓰자는 것이다."(15쪽)

  

생생하고 사람 냄새 나는 역사. 연구 과정은 다음과 같습다.

"1단계는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1차 사료를 이용해 사건을 재구성해보는 것이다. 2단계는 기타 문헌 자료를 꼼꼼히 살펴 빠진 것과 뒤집힌 것 등을 보충, 수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3단계는 관련 연구 성과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229쪽)

"강이천 사건과 관련해서 그동안 검토한 자료는 고스란히 내 책상의 왼편에 쌓여 있다. 인쇄된 분량으로 치면 약 3천 쪽 정도다. 그 가운데는 순 한문으로 된 자료가 대략 3백 쪽, 일본어 논문도 2편이다."(337쪽)

"이번의 강이천 사건 연구에서 나는 독일에서 나름대로 배운 공부법을 활용해 보았다. 대담한 가설을 세우고 엄밀한 논증을 통해 하나씩 그것을 증명하려 한 점에서 특히 그렇다."(342쪽)

   

어떻게 보면 영업 비밀 같은 말씀니다. 책의 큰 줄기인 정조와 강이천의 문화투쟁 못지않게 연구 과정 하나하나가 소중합니다. 꾸준히 공부하고 꼼꼼하게 분석하며 때로는 과감하겠습니다. 무엇보다 다음 글처럼 따듯한 눈빛과 마음으로.

"김건순이든, 이주황이든, 아니 그 누구라도 그 자신이 태양의 위치를 차지할 만한 충분한 자격과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일상에서 우리들 각자가 그러하듯, 어떤 개체라도 비유하자면 태양이요, 동시에 하나의 행성이며 또한 유성이다."(7쪽)


<마음에 남 글>


요컨대 강이천은 18세기 후반의 불온한 분위기를 한 몸에 지닌 "종합선물세트"였다. 11쪽

   

강이천은 기성 체제가 용인하지 않는 새로운 사회, 조선 왕조가 "금지한" 이상사회를 고민했다. 천주교의 천당 이론이 삼강오륜을 압도하는 사회, 사회적 약자가 문학과 역사의 주된 관심거리가 되는 문화, 공자와 맹자와 주자의 가르침이라도 당연히 검증을 거친 뒤라야 믿을 수 있다는 경험적 사고가 강이천의 머릿속에 여물어가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조선 왕조가 금기시한 "사회적 상상력"의 분출이었다. 12쪽

   

우리에게 "문체반정"으로 알려진 그 조치를 정조는 한 단계 더 강화시켰다. 중국 서적의 수입금지, 패관소품식 글쓰기의 금지를 넘어 과거시험에서 패관소품류를 완전 추방하고 이런 불온한 문체를 연상시키는 글씨체까지 엄금했다. 철저한 사상통제요, 문화적 헤게모니의 장악을 위한 "문화투쟁"이었다. 12쪽

   

아무리 작은 이야기라도 겹겹을 풀어헤쳐 놓고 보면 그 속에 우주가 담겨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하나의 작은 점에 불과한 것이라 해도,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그 안에 무수한 직선과 곡선이 있다. 17쪽

   

아는 만큼 보인다. 에피소드가 되어버린 근대의 역사를 해체하는 작업, 사실의 파편 더미를 뒤져 거기에 켜켜이 간수되어 있는 사람들의 여러 가지 복잡한 느낌과 다양한 전략을 되살려내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당분간 그 작업에 매달리기로 했다. 20세기를 뒤흔든 근대적 역사학을 대신할 21세기 나의 새로운 역사학을 위하여. 18쪽

   

강이천은 <한경사>를 통해 서민의 삶을 생생하게 묘사해 그들의 소박하고 진솔한 모습에 대해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어 많은 학자들의 주목을 끈다. 강이천은 시정 공간을 무대로 나날의 삶을 꾸려간 인간 군상의 애환과 숨결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데 탁월했다. 35쪽


그는 눈앞의 사물과 풍경, 일상적인 언어, 시정의 풍경을 다룬 시가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소재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저자의 개성이 드러난다고 믿었다. 이처럼 주관적이고 개성적인 글쓰기가 강이천만의 특징은 아니다. 그것은 18세기 문단 일각에 유행한 소품문의 보편적인 특징이기도 했다. 35쪽


강이천은 늘 장르와 관계없이 전형적인 유학자와는 달리 독특하고 개성적인 인물들을 소재로 글을 썼다. 그의 문학에는 일관성이 있다. 36쪽

   

정조는 영특해서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는 데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했다. 39쪽

   

각 방면의 재능 있는 예술가와 학자들은 사소한 일상에서 심각한 의미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기성의 틀에서 벗어난 대안이 적극적으로 마련되던 시기가 바로 조선의 18세기였던 것이다.

체제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것은 위기였다. 39쪽


정감록과 천주교 소문화 집단은 성리학적 이상사회가 아닌 그들 나름의 새 세상, 곧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새 나라를 건설하고자 했다. 47쪽


천주교는 18세기 조선 사회를 들여다보는 하나의 현미경이다. 49쪽

   

그것이 알고 싶어 성경 구절을 자주 읽곤 했다. <마태복음> 22장쯤에서 무엇인가 의미 있는 사실이 탐지되었다. 놀랍게도 거기에는 예수의 재림, 최후의 심판, 말세의 징조들이 언급되어 있었다. 50쪽

   

그러면 무엇이 그들 선비를 움직였을까? 그들은 마음을 움직일 만한 진짜배기 글을 읽은 것이 아니겠는가. 그 글은 《성경》이라야 한다. 또는 중세 교부철학을 대표하는 묵직한 저술이라야 한다. 51쪽

   

따라서 역사가는 기록을 중시하면서도 기록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노력이 필수적이라고 믿는다. 가설과 추론과 상상력이 충분히 발휘되지 않는다면, 역사학이란 빈 무덤의 외벽을 장식하는 그야말로 별 쓸모없는 지루한 작업이 되고 말 것이다. 57쪽


당시 국왕 정조는 조선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강이천 등을 처벌했다. 61쪽


소품의 가장 큰 특징은 글쓰기의 주관성에 있다. 감성적인 글쓰기, 자기 고백적이고 감정이 듬뿍 담긴 주관적인 글이 소품의 대종을 이루었다. 자기 고백적인 산문의 출현, 이것이야말로 소품의 문학사적 기여였다. 소품을 좋아하면 자연히 성리학적 가치에서 멀어진다. 정해진 격식을 떠나 글쓴이의 눈으로 사물을 직접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가치의 다원화가 이루어진다. 중국에서 양명학파의 사상이 소품에 깊이 스며든 것은 우연이 아니었고 정조는 바로 이런 점을 두려워했다. 115쪽

   

소품은 상상과 신비의 세계를 다뤘다. 성리학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비정통적인 자질구레한 소재일 뿐이었다. 116쪽

   

왕의 꼼꼼함과 치밀함은 신하들을 감복시킬 때가 많았다. 133쪽

   

강이천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답답한 현실을 타개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느라 예언과 천주교에 관심을 둔 것뿐이었다. 139쪽


그들이 즐겨 쓴 소품은 이덕무의 예에서 확인되듯이 무이념적이기도 했다. 145쪽


요컨대 18세기 조선 사회에 유행한 양명학, 양명좌파, 고증학, 천주학, 소설, 소품은 조선 사회를 위협하는 "내부의 적"이었다. 146쪽

   

사회적 상상력 : 대안 사회 또는 미래 사회 146쪽

   

천주교회가 신문명의 매개자 역할을 마감하고 순수 종교적 기능에 몰입하게 된 시기에 강이천과 김건순 등은 천주교회에 접근했다. 그들은 천주교를 통해 서양의 기술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형이상학적 신학 및 철학의 세계에 더욱 경도되었으며, 신비주의를 지향했다. 특히 강이천은 유토피아를 꿈꾸는 일종의 공상적 이상주의자였다. 189쪽

   

강이천 등은 새로운 세상을 향한 열망 때문에 벼랑 끝에 섰다. 231쪽


점차로 나는 강이천과 김건순과 김려 등에게는 인격적인 면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짐작하게 되었다. 그들은 서민 지향적이었다. 모든 이가 골고루 잘 사는 평화를 지향했다. 230쪽


강이천 일파는 새로운 문화를 지향했다. 그것은 동정심과 자애가 가득한 세상이었다. 그들은 평화와 나눔의 공동체를 꿈꾸었다. 234쪽

   

때로 인간은 계급이 아니라 개인적 성향과 취미와 욕망을 위해 목숨을 걸 수도 있다. 내가 이 연구를 통해 이처럼 평범한 진리를 재발견하게 된 것은 큰 다행이다. 235쪽

   

그(강이천)의 마음은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고립된 약자를 향한 동정심으로 가득했다. 245쪽


그(강이천)는 현실의 혁명가로서는 부적격했다. 그저 몽상적인 지식인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바로 그 몽상에 파괴적인 힘이 있었다. 당시 몽상의 힘을 바로 인식한 이는 아마 국왕 정조가 유일하지 않았나 싶다. 강이천의 제어되지 않은 상상력이 현실과 단단히 결합될 경우 그것은 국가를 전복시키고 성리학 중심의 조선 문화를 여지없이 파괴시켜버릴 수 있다는 걱정, 왕은 바로 그런 염려를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246쪽

   

역사적 기록은 연구자가 던지는 질문에 대해 불완전한 단서만을 제공한다. 연구자가 할 일은 바로 그러한 불완전성을 극복하는 것이다. 341쪽

   

그의 시문詩文은 구성이 주밀하고, 관점이 공평무사하며, 그러면서도 눌리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서는 따뜻한 마음을 듬뿍 담고 있다. 356쪽

   

새 나라의 특징 :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이 더 이상 굶주리지도 않고 억울한 처지에 놓이지도 않는 사회. 사회정의가 실현된 사회 359쪽

   

이 책에서 내가 강이천의 입장을 중시한 것은 그것이 객관적으로 중요해서라기보다는 내 자신이 그의 행위에서 의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이야기를 가급적 풍부한 서사, 이야기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3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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