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책을 부릅니다. 『조선의 아버지들』에서 『마흔, 역사를 알아야 할 시간』, 그리고 『난중일기』. 천천히 보다 <을미일기>(1595)부터 가속 붙어 사흘만에 다 읽었습니다. 정식 제목은 『개정판 교감완역 난중일기』. 원문과 여러 이본, 관련 사료를 꼼꼼히 검토하여 번역한 책입니다. "4백여 년 만에 원문을 복원한 국내 최초의 난중일기 완역본"뒷표지 첫 줄에 묵직한 감동! 정밀한 해제와 주석에서 번역자님의 오랜 열정을 느낍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한 줄 한 줄 읽습니다.
『난중일기』는 정조 때 윤행임과 유득공이 이순신 장군의 친필 일기를 해독하여 정리하면서 붙인 이름입니다. 원래는 연도별로 <임진일기>(1592)부터 <무술일기>(1598)까지있습니다. <임진일기>는 왜란이 일어나던 4월이 아닌 1월 1일부터입니다. 전쟁을 예측하고 대비하며 한 자 한 자 써낸 일기! 특별한 일 없는 한 거의 매일 쓰고, 너무 바쁜 날엔 날씨라도 적습니다. MBTI 검사하면 왕 INTJ가 나올 법합니다. 매우 규칙적이고 자기와 주변 관리에 철저하며 생각 깊은 사람.
읽다 보면 광화문의 우람한 동상보다 개결하고 섬세한 선비가 보입다. 자주 아프고 달빛만 고와도 잠 못 이루며 틈틈이 어머니의 안부를 마음쓰는. 원균에 대해선 반응이 딱 두 가지입니다. "~해서 우습다." 아니면 "~해서/하니 흉악하다." 일기장에라도 스트레스 안 풀었으면 어찌 사셨을까요. 가장 뭉클한 일기는 <정유일기>(1597) 4월 1일. "맑음. 감옥의 문을 나왔다."억울하게 옥에 갇혀 죽을 고비 넘기고 나온 날부터 일기를 씁니다. 아, 얼마나 위대한가요!
어릴 땐 이순신 장군이 영웅인 줄 알았습니다. 물론 지금도 영웅 맞습니다. 차갑고 딱딱한 동상이 아닌, 인간의 얼굴을 한 영웅. 짧게는 2~3일, 길게는 2주 넘게 앓으면서도 나라와 백성을 걱정하고, 장병들의 오랜 노곤함을 풀어 주려 밤늦도록 놀게 합니다. 아들이 하인에게 곤장을 치자 뜰 아래로 불러다 꾸짖고 타이릅니다. 순[舜] 임금처럼 나라를 잘 다스린 신하[臣], "네[汝]가 화합하라[諧]"는 자처럼 전쟁 가득한 세상을 평화롭게 만든 어른. 고맙습니다, 장군님!
* 다른 책보다 저작권이 매우 세게 걸려 독후감에 <마음에 남은 글>을 인용하지 못했습니다. 북 인덱스 붙인 구절을 독서공책에 옮겨 쓰며 아쉬움을 달래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