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마일한문샘 Oct 09. 2022

정혜원의 『북촌 김선비 가족의 사계절 글쓰기』

그런 글을 쓰고 싶습니다

읽은 날 : 2017.3.21(화)~3.22(수)

쓴 날 : 2017.6.27(화)

면수 : 176쪽

* 5년 전 글을 다듬었습니다.


우리 학교에서 유일하게 학습지 한 번 안 낸 ㅇㅇ. 늘 자거나 떠들거나 지각생 깜지 쓰고, 가끔 담배 냄새도 솔솔 풍깁니다. 논술형 평가 채점하다 이 친구 답안에 순간 울컥. '이거 대박이다!' 싶어 다음 수업 시간에 운 띄웠습니다.

"ㅇㅇ아, 너 정말 잘 썼던데 애들에게 읽어 줘도 될까?"

"에이, 싫어요."


"그럼 답지 보고 싶은 사람만 살짝 보여 주는 건 어때?"

"그건 괜찮아요."(의외네?)

활달한 반장이 "쌤! 저 봐도 돼요?"

몇 줄 읽더니 "우와~~~ ㅇㅇ 쩐다"

순간 서로 읽겠다며 달려오는 아이들!

ㅇㅇ도 싫지 않은 눈치입니다.


『북촌 김선비 가족의 사계절 글쓰기』는 말썽쟁이 명언이의 좌충우돌 성장기입니다. 처음 읽을 땐 몰랐는데, 명언이에게서 재작년에 전학 간 ㅇㅇ이를 봅니다. "내가 은근 글 쫌 쓰지" 하며 한때 소설가를 꿈꾸었단 아이. 명언이 마음의 순수한 열정이 차츰차츰 자라듯, ㅇㅇ이도 올곧고 폭넓은 사람으로 익어 가길 바랍니다.


ㅇㅇ이가 쓴 글의 일부입니다. "내게 1억이 있다면 일단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절반을 기부하겠다. (중략) 그리고 시간 되면 아프리카에 가서 말른 애들이 내가 기부한 돈으로 물과 밥을 먹어 살찐 모습을 보고 싶다." 진실한 글은 마음을 움직입니다. 도 그런 글을 쓰고 싶습니다.


<마음에 남은 글>


명언은 문득 눈을 들어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달빛 아래 아버지의 옆모습이 그림 같았다. 잘생긴 학을 보는 듯했다. 더러운 진흙탕을 멀리하고 소나무 위에 날개를 접고 앉은 학. 마흔이 넘도록 글방 서생 처지였지만 명언은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자랑스러웠다. 18쪽

   

예로부터 위엄 있는 관리가 타고 다니는 것이 말이라면, 나귀는 초야에서 학문을 익히는 선비가 타는 것이란다. 소는 세상을 등지고 숨어 사는 은자가 타는 것이고. 28쪽

   

명언은 시를 잘 들으려고 귀를 쫑긋 세웠다. 시가 끝나도 계속 이어지는 거문고 소리처럼 마음속에 여운이 길게 남았다. 35쪽


시를 쓴 최 진사의 생각은 달랐다. 수많은 꽃 중에 매화만 의지가 높은 것이 아니라 산그늘에 붉게 타오르는 두견화도 매화 못지않다는 것이다. 두견화는 곧 아버지를 가리켰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아버지의 의지가 높다는 것을 최 진사 어른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자기를 알아주는 벗이 고마워 아버지는 눈물을 흘렸으리라. 한 편의 시로 최 진사 어른과 아버지는 마음을 주고받은 것이다. 36쪽


어린 시절은 짧은 봄날과 같으니 아껴 쓰라는 한 편의 시가 어머니의 회초리보다 무서웠다. 37쪽

   

메마르고 딱딱한 명언의 가슴을 뚫고 막 시심이 새순처럼 돋아나는 중이었다. 37쪽

   

아버지는 자주 팔을 뒤로 뻗어 명언이 잘 매달려 있는지 살폈다. 손끝의 온기가 온몸으로 전해졌다. 39쪽


옛사람들은 여러 문학의 갈래 중에서 시야말로 인간의 감정을 가장 순수하게 표현하고 정서를 편안하게 해 준다고 믿었다. 그래서 생활 속에서 흔히 시를 짓곤 했다. 40쪽


옛사람들은 시집간 딸이 궁금할 때, 귀양 간 남편의 건강이 염려될 때, 오랫동안 못 만난 벗이 그리울 때 편지를 썼다. 58쪽

   

옛사람들에게 편지는 생활의 일부였다. 58쪽

   

옛사람들의 일기를 보면 사실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그날 가장 중요한 일과를 쓰고 문장을 잘 가다듬어 문학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일기는 사실의 기록이자 개인의 역사이다. 우리 조상들은 일기 쓰기를 즐겼다. 여행을 가서도 일기를 썼고, 학문을 연구하면서도 일기를 썼다. 심지어 화살과 총탄이 날아다니는 전쟁터에서도, 적군에게 둘러싸인 피난처에도 일기 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일기 쓰기를 통해 올바른 삶의 방향을 찾고 싶었던 것이다. 80쪽


궁녀들이 쓴 두 일기는 모두 역사적 사건을 정면으로 그리고 있다. 전쟁터를 호령하던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보다 더욱 치밀하고 박진감 넘치게 역사를 기록했다. 82쪽


서재는 책을 보관하고 독서를 하는 곳이다. 조선 선비들에게 서재는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공간이었다. 선비의 인격이 완성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100쪽

   

학문은 아버지가 살아가는 데 없으면 안 되는 물과 공기였다. 114~115쪽

   

농부의 즐거움이 잘 자란 곡식을 보는 것이듯, 아비의 기쁨은 훌륭하게 성장한 자식을 보는 것이란다. 117쪽

   

임금이 상소문을 읽고 신하들과 의논하여 과거의 시제로 냈다는 것은 아버지에게는 형의 과거 급제 못지않게 기쁜 일이었을 것이다. 136쪽


작문요람 : 글쓰기를 위한 열 가지 가르침 (148~149쪽)

일. 글은 그 사람의 얼굴이다

이. 정성을 다해서 써라

삼. 꾸미지 말고 자연스럽게 써라

사. 나의 생각이 드러나야 한다

오. 스스로를 속이는 글을 쓰지 말아라

육. 글은 형식보다 내용이 더 중요하다

칠. 빨리 쓰려고 서두르지 말아라

팔. 반드시 쓰고 난 글을 여러 번 고쳐라

구. 좋은 글의 뿌리는 독서와 사색이다

십. 세상 사람들을 위한 글을 써라

   

날이 어두워졌다. 명언은 촛불을 밝힌 뒤 지필묵을 벌여 놓고 책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들창을 스치는 바람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가족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고 싶다는 욕심도, 친척 어른들의 평가가 두렵다는 마음도 사라졌다. 명언의 마음은 오로지 앞으로 태어날 조카에 집중했다. 밥 먹는 것도 잊은 채 무엇엔가 골똘히 몰두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150쪽


글은 그 사람의 얼굴이야. 축문에서 너의 얼굴을 찾을 수 있었다. 가족을 이해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쓸 수 없는 글이었어. 쓰고자 하는 대상에 지극한 마음으로 다가가면 진실한 생각이 떠오르지. 그 생각을 잘 갈무리하여 쓰는 것이 우선이고, 다른 사람이 보기에 아름답게 꾸미는 것은 나중이란다. 154~155쪽


독서는 세상의 지식과 지혜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첫 번째 과정이다. (중략) 독서가 지식과 지혜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생각의 폭을 넓혀 준다면 글쓰기는 보다 깊이 있게 완성시켜 주는 역할을 했다. 158쪽

   

진짜 글은 마음속에 깨달음이 가득 차면 자연스럽게 표현된다. 159쪽

   

글은 옛사람들이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었어. 또한 삶을 풍요롭게 하고 즐겁게 만들어 주는 놀이이기도 했지. 174쪽

   

옛사람들의 삶은 글과 뗄 수 없었어.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가족과 친척 어른들의 축하 글을 받았고, 죽은 뒤에는 자손과 친구들이 묘지명을 지어 무덤 앞 비석에 새겼지. 글 속에서 살다 가는 것이 옛사람들의 한평생이라고 할 수 있어. 175쪽

   

흰 종이를 검은 글씨로 한 자 한 자 채우며 우리 조상들은 정신의 가치를 추구했던 거지. 176쪽



매거진의 이전글 이순신/노승석의 『교감완역 난중일기』(201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