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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한문샘 Oct 10. 2022

강민경의 『운명아, 덤벼라!』(2016)

물을 닮은 우정

읽은 날 : 2016.11.12(토)

쓴 날 : 2016.11.14(월)

면수 : 128쪽

* 6년 전 글을 다듬었습니다.


이덕무 관련 책은 무조건 찾아봅니다. 운명아, 덤벼라!도 그래서 만났습니다. 책만 보는 바보가 이덕무와 백탑파 문인들 이야기라면, 운명아, 덤벼라!는 박제가와의 우정에 초점을 맞춘 책입니다. 한문기사 검색하다 책 소개글 보고 한국고전번역원 고구마 앱에서 e-book 찾아 한달음에 읽었습니다.

 

백동수 집에 붙은 글씨 덕에 만난 사람. "나는 다시 한 번 그 시를 천천히 읽어 보았다. 나보다 아홉 살이나 어린 소년이 어떻게 이렇듯 기품 있고 힘 있는 시와 글씨를 쓸 수 있을까 신기하고도 궁금했다."(16쪽) 이심전심이었을까. 박제가도 이덕무를 만나고 싶어했습니다. 키와 나이, 성격 모두 달랐지만 둘은 30년 가까이 마음을 나눕니다. 이덕무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서얼. 가난. 꿈꾸고 싶어도 세상이 곁을 내어 주지 않는 삶. 고단한 나날에 좌절하고 아파하던 그들의 발걸음이 눈에 선합니다. 네이버캐스트 인물한국사였던가요. 이덕무의 앞모습 그림이 쓸쓸합니다. 이덕무 서른 아홉, 박제가 서른에 규장각 검서관으로 쓰임받기까지 그들의 젊음은 막막하고 음울했습니다. 그 시간을 이겨낸 힘은 눈부시고 눈물겨운 우정입니다.


운명아, 덤벼라!는 물을 닮았습니다. 글도, 그림도. 요즘 아이들에겐 그리 재미있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눈 맑은 어린이라면 이야기의 가치를 알아보지 않을까요. 읽으면서 작가님이 이덕무와 박제가를 매우 깊이 이해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글의 흐름도 자연스럽습니다. 참다운 벗을 찾거나 따뜻함이 그리운 분들께 추천하고 싶습니다. 남모르는 어려움에 삶이 고단한 분들에게도.

 

* 이덕무와 박제가 이야기가 한 장(章)씩 엇갈립니다. 이덕무 부분은 연노랑, 박제가는 하늘색 배경에 글 담은 감각이 돋보입니다.


<마음에 남은 글>


이 글을 읽는 친구들이 힘든 일 하나 없이 세상을 살아가길 바라지 않습니다. 힘든 일이 있어도 당당히 그 운명에 맞서길 바랍니다. 힘들수록 서로 손잡고 고난을 헤쳐 나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함께 손잡은 이가 있다면 어떤 어려운 일 앞에서도 외롭지 않을 테니까요.

저도 여러분께 그런 친구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6~7쪽, 작가의 말

 

나는 그와 벗이 되고 싶었다.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벗,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벗, 서로 충고해 주고 본받을 수 있는 그런 벗이 되고 싶었다. 19쪽

 

나는 평소 어눌한 편인데 이상하게도 이덕무 앞에만 서면 말이 막힘없이 술술 나왔다. 다른 사람들은 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도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잘 이해해 주었다. 20쪽

 

나와 마음이 맞는 이는 백 세대 이전의 인물이요, 내가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은 만 리 밖 먼 땅뿐이었다. 22쪽


거침없이 토해 내는 울분을 이덕무는 가만히 들어주었다. 맞장구를 쳐 주지도, 그렇지 않다고 위로를 해 주지도 않았지만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나는 위로를 받는 것 같았다.

"우리 처지가 그렇긴 해도,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생명이 어디 있겠나? 하루살이도 하늘의 뜻에 따라 이 세상에 왔다 가는 게 아니겠나?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도 분명 하늘의 뜻이 있을 것이네."

이덕무는 조용조용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과연 그럴까? 내 삶도 어딘가에 쓸모가 있을까? 내 인생에도 하늘이 두신 뜻이 있을까? 이덕무의 말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26~27쪽

 

우리의 능력이 어떻든 간에 세상은 우리에게 곁을 내어 주지 않았다. 사람마다 주어진 운명이 다르고 이렇게 무기력하게 살다 가는 것이 내 운명이라고 여기면 될 터였다. 하지만 나는 그러기 싫었다. 세상이 곁을 내어 주지 않는다면 내가 자리를 만들면 된다. 운명이 나를 휘두른다면 나도 운명을 휘두를 테다.

운명아, 덤벼라! 내가 맞서 주마. 29쪽


나는 일부러 크게 소리 내어 책을 읽었다. 자식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부끄러움을 떨쳐 버리기 위해서라도 책 읽는 일에 매달렸다. 35쪽


책은 내게 밥이요, 집이었다. 길이요, 운명이라 여겼다. 35쪽

 

맹자와 나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벗이라 자신했었다. 그런데 지금 배고픔을 해결하자고 벗을 팔아먹은 것이다. 이런 내 처지가 불쌍하면서도 싫었다. 36쪽

 

내게 가난이란 평생 지고 가야 할 운명이었다. 어차피 지고 가야 할 운명이라면 차라리 가난을 편안히 여기자. 그러려면 가난을 잊는 것도 한 방법이리라. 억지로 거부하고 괴로워하면 오히려 가난에 휘둘리게 될 것이다. 나는 결코 가난에 휘둘리지 않으리라. 가난을 잊고 가난을 편안히 여기며 살 것이다. 40~41쪽

 

연꽃 향이 코끝을 간질이고 매미는 기분 좋게 날개를 비볐다.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방울방울 옷자락에 튀었다. 47쪽

 

한 줄기 하늘빛은 시내 바닥까지 가 닿았네 48쪽


박지원 선생은 뼈대 있는 집안의 양반인데도 우리 같은 서얼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양반집 자제를 대할 때나 우리 같은 서얼을 대할 때나 눈빛이 전혀 다르지 않았다. 그는 오직 사람됨을 먼저 보았다. 49쪽


백탑청연 : 백탑 아래 맺은 맑은 인연 52쪽

 

누이가 그리워하는 것은 그 맛이 아니라 어린 사남매가 머리를 맞대고 함께하던 그 시절이리라. 58쪽

 

그러나 나는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그들의 학문을 얼른 접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내 눈에 모두 담아 오리라. 하나도 빠짐없이 보고 배우리라.'

나는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65~67쪽

 

내 삶은 스스로 만들어 가겠다고 큰소리를 탕탕 쳤지만 사방을 막아 옴짝달싹할 수 없게 만든 내 인생의 담장은 높고 단단했다. 그런데 요동 벌판에 서고 보니, 내 삶을 가두던 높은 담장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내가 그토록 와 보길 원했던 이곳을 밟고 나니, 이젠 내 꿈도 내 길도 다시 찾을 수 있을 듯했다.

"가야지요."

"가야지."

"앞으로 나가야지요."

"앞으로 나가야지."

이덕무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고 씽긋 웃었다. 이젠 내 후손에게도 꿈을 가지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가슴이 벅차오르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요동의 흙바람을 씻어 내려는 듯, 나는 슬쩍 눈가를 훔쳐 냈다. 67~69쪽


"책의 주인은 가치를 알고 읽어 주는 사람일 텐데요." 71쪽


우리는 여비로 가져간 돈을 남김없이 탈탈 털어 책을 샀다. 그리고는 숙소에서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모르고 사 온 책을 읽었다. 71쪽

 

우리나라에서는 책을 살 여유가 있는 사람은 책을 알아볼 안목이 없고, 책을 알아볼 안목이 있는 사람은 책을 살 여유가 없었다. 76쪽

 

"그렇기야 하지. 그러나 어쩌겠나? 우리 조선은 길이 없어 수레가 다니기 어려운걸."

"길을 만들면 되지요."

"산이 높지 않은가?"

"산을 깎으면 되지요."

"길이 좁지 않은가?"

"길은 넓히고 수레는 작게 만들면 되지요."

"고개가 많이 험하지 않은가?"

"중국 촉 땅만큼 험할까요?" 78쪽

 

수레가 다니면 길은 자연스레 만들어집니다. 78쪽

 

"자네의 글은 분명 후세에까지 빛날 것이네...... 백성을 돕고 세상을 비출 것일세." 80쪽


꿈을 향해 발을 뗄 수 있다는 것, 후손에게 절망이 아닌 희망을 물려줄 수 있다는 것, 우리도 세상에 흔적을 남길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우리를 벅차게 했다. 85쪽


중국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굴러다니는 돌이나 짐승의 똥까지도 제각각 쓰임새가 있다는 점이었다. 85쪽

 

세상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설레고 가슴 벅찬 일을 줄이야. 85쪽

 

서얼은 양반이 지나가면 얼른 뒤돌아서 다른 길로 가야 했고, 향약 같은 모임에서도 따로 자리를 잡고 앉아야 했다. 91쪽

 

나에게는 잘 고쳐지지 않는 버릇이 있다. 세상 물정에 어둡고 인생살이를 잘 못하는 나 같은 사람을 이해해 주는 이를 만나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리지 않고 다 털어놓는 것이다. 91쪽

 

시가 있었기에 이토록 힘든 시간을 그나마 견딜 수 있었지요. 121쪽

 

고단한 삶이었지만, 벗들이 있어 지치지 않고 웃을 수 있었습니다. 그대를 만날 수 있었으니, 내 삶 또한 팍팍하지만은 않았다 하겠습니다. 1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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